등록날짜 [ 2010-11-24 13:02:18 ]
신령한 일에는 언제나 시험이 따라
끝까지 믿음 지키며 요동치 말아야
성막을 지을 때는 시련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삼 일 만에 짓겠다고 하신 성전은 아무도 헐 수 없는 우리 심령 안에 세우실 성전이었습니다. 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필요합니다.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이 없듯이 내 안에 신령한 성전이 지어지는 일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난은 물론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 안에 이런 신령한 성전을 지으려 할 때 시련이 오는 이유는 그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던 집을 빼앗아 하나님의 집을 지으려 하니 마귀들이 그냥 그 집을 빼앗기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도 공생애를 시작하자 마귀가 시험하였습니다. 하물며 우리를 시험하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하지 않게 하신다고 했습니다(고전10:13). 또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약1:12). 그러므로 끝까지 버티면 이깁니다.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승리합니다. 절대로 이 믿음이 끝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우리가 시련을 당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첫째, 축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성령으로 수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정혼한 여자이기에 아이를 가진 것이 알려지면 그때 법으로 돌에 맞아 죽든지 화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인류를 구원할 예수를 잉태하는 최고의 축복과 신구약을 관통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구약에 예언한 말씀을 뱃속에서 이루고, 그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모두 지켜보았으니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둘째, 시련을 통해 교만을 낮추시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40년 광야 여정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더 낮추고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었습니다.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신8:2~3).
셋째, 시험과 고통 중에서 진짜 믿음을 보시려는 것입니다. 욥은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지지하면서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욥은 전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은 물론 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넷째, 영적인 지도자로 성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에게 음탕한 고멜과 결혼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지도자로서 주님과 동일한 심정을 갖게 하시려고 시련 가운데 거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시련을 경험하게 하면서 영적인 지도자를 만들어 가십니다. 또 모세는 애굽 왕자의 자리에서 떠나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이스라엘을 인도할 능력 있는 지도자로 성장했습니다.
시험을 이길 때마다 건설되는 성막
시험을 이기려면 우선 말씀을 잘 읽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기도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항상 성령이 충만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또 하늘에 소망이 충만해야 시험을 이깁니다. 내가 어렵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신령한 집이 내게 지어져 가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어렵고 힘들지만 이것을 통과해야 다음에 복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만큼 내 영력은 더 커집니다.
영력을 얻는 과정은 군사가 전투에서 피를 흘리며 한 발짝 한 발짝 고지를 점령하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이기는 것은 영적인 유익입니다. 시험은 복을 주시기 위해 약속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꼭 시험을 통과해서 하나님이 예비한 복을 자신의 몫으로 움켜쥐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신령한 성막을 지을 때 시련이 옵니다. 시험이 올 때마다 성막을 한 단계 한 단계 내 심령 안에 크게 건설하는 줄 믿고 기쁘게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