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잘라내야 쓰임받는 조각목이 된다

등록날짜 [ 2010-12-22 13:30:32 ]

세상 윤리와 도덕은 믿음의 기준 될 수 없어
스스로 잘못된 부분 알고 고백해야 참된 신앙


조각목인 싯딤나무는 커다란 가시가 많고 심하게 뒤틀렸으며, 악(惡)마디도 많은 나무입니다. 이런 보잘것없는 나무는 그대로는 무엇에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가공 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 쓸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세상에서 모진 세월을 보낸 사람일수록 예수를 만나면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재목이 됩니다. 이미 고난과 역경이라는 수많은 가공 절차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이 살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하던 버릇대로 자기가 정한 행동의 기준, 믿음의 기준을 갖고 그 이상은 절대 행동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정한 믿음
우리의 믿음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믿음의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이 정하신  믿음입니다(막12:30).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습니다(계2:10). 이것이 주님이 정하신 믿음입니다. 스스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신앙생활을 자기 수준에 맞추어 적당히 하려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적당히 해도 신앙생활은 ‘적당히’가 아니라 ‘죽도록’ 해야 합니다. 순교로 생을 마감 지으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정한 믿음을 따르지 않고 임의대로 내가 정한 것만 믿는다면 그것이 타락입니다. 내가 얼마나 쓸모없는 조각목 같은 인생인가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쓰임받을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나를 잘라내야 하는 조각목
조각목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쓰임새에 맞도록 잘 잘라야 합니다. 조각목을 성전 기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섯 자(尺)로 잘라야 하는데 나무가 “나는 일곱 자니까 일곱 자 그대로 있겠소”라고 자기주장을 한다면 그 나무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나를 쓰시자고 할 때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고후10:5)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도 “왜 저에게 그런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그래도 내가 사회에서는 이러이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인데...”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임새보다 너무 커서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곤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지식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하나님의 수준에 맞도록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믿음을 끌고 가는 것이 내 지식이나 환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내 믿음을 끌고 가면 망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믿음을 끌고 가는 기준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적당히 내 지식에 맞게, 환경 수준에 맞게 신앙생활 하려고 한다면 쓰임받으려는 조각목의 자세는 아닙니다.

쓰임받기를 바라는 조각목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저는 부족해서 못 해요”라고 합니다. 사양하는 것을 겸손으로 잘못 알고 너무 자신을 잘라내서 쓰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주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만 하면 하라고 명령하신 주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리 걱정이 많습니까? 목사인 저는 육체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는 설교하러 나오기조차 힘이 듭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쓰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내가 왜 이렇게 걱정하나?’ 설교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니 그분만 배경 삼고 담대하게 나가면 그분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더 크게 나를 사용하셨습니다. 못 한다는 생각 그 자체가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온 발상입니다.

나를 쓰시는 분이 쓰시려고 작정하시면 모든 일을 매우 쉽게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은 그분이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나를 쓰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자신을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성령의 지식과 지혜와 성령의 권능으로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조각목을 소용에 맞게 치수대로 잘라 쓰듯, 우리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쓰임받을 때 감사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에는 ‘예’와 ‘아멘’밖에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18~20)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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