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자격에 대해-15] 말씀 안에서 엄한 훈계로 다스려라

등록날짜 [ 2011-04-29 16:09:11 ]

교회는 곧 하나님의 몸임을 일러주며
분명하고 확실한 교육으로 가르쳐야

어릴 때 다니던 교회 주일학교 부장님이 집안 아저씨뻘 되는 분이셨는데 제가 그 아저씨를 자주 놀려댔습니다. 그날도 역시 교회에서 아저씨를 놀려대고는 뜀박질하며 떠드는데 그분이 다가오더니 제 따귀를 얼마나 세게 때리는지 그 자리에서 제 몸이 몇 바퀴 빙그르르 돌고는 자빠졌습니다.

“이 녀석, 교회가 어디라고 감히 떠들고 부장선생님을 놀려!”

저는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어머니께 쫓아가서 일러바쳤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가만히 방문을 열고 나가시더니 잠시 후에 손에 참나무 회초리를 잔뜩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회초리로 당신의 종아리를 내리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쳐 하나님의 성전에서 떠들다 이렇게 맞고 왔으니, 잘못 가르친 제 잘못입니다. 용서해주세요.”

피가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당신의 종아리를 내리치시는 모습을 보니까 어찌나 정신이 번쩍 들든지 얼마나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부장선생님께 가서도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얼마나 빌었는지 모릅니다. 요즘 어머니들 같으면 “왜 남의 자식 때려요?” 하고 대들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어떻게 자식을 큰 사람으로 만들겠습니까?

저는 우리 교회학교 교사가 아이들을 바로 가르치느라고 체벌하는 것을 문제 삼는 학부모를 불러서 나무라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합니다.
“네 자식을 하나님 말씀으로 길러주려고 울면서 기도해주는 사람이 바로 교사가 아니냐? 그 교사가 네 자식을 바로 가르치려고 그렇게 애써가며 훈계하고 체벌하면 고마워해야지 왜 불만하느냐? 네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기에 교사가 대신 바로 가르쳐주는 것 아니냐?”

교육할 때는 모질게 해야 그 아이가 자라서 큰 인물이 됩니다. 옛날에 제가 주일학교 다닐 때는 부장선생님께서 교회에서 떠들거나 장난하는 아이들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회초리로 다스렸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교회에 오면 벌써 ‘하나님의 성전은 기도하는 곳, 말씀 듣는 곳’으로 인식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고 태도를 달리합니다. 우리는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잘 알아서 아이들이 스스로 살려고 신앙생활 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칩니까? 히브리서에 뭐라고 했습니까? 학생들이 잘못하면 교사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처럼 통곡하고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히13:17).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오늘까지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저를 호되게 야단치며 가르쳐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더욱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바로 그들이 윤석전 목사를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들을 때려서 가르치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되 죽을 각오로 기도하고 울어가며 가르치고 꼭 필요할 때는 매로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심정을 품고 말입니다. 최고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은 세상 교육이 아닌, 하나님 말씀의 교육으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 행동한 대가가 무엇인가도 바로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예수를 믿지 않고 죄를 지은 대가로 갑니다. 죄의 대가를 어릴 때부터 확실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잘못해도 좀처럼 체벌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대신 교사가 금식하고 울며불며 몸부림치며 아이들을 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그런 정신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름만 교사인 엉터리 교사들이 한국교회에 꽉 차 있으니 한국교회에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에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교사들이 큰 인물을 키워내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교사의 책임이 이처럼 막중합니다.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從)의 직분입니다. 종(從)이 어떤 사람입니까? 종은 소유가 없고, 자유권 등 기본권이 없습니다. 그러니 학생들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에서 절대로 주님을 초월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주님을 비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반드시 주님의 수중에 들어 있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잘 살펴서 그 마음처럼 움직여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사의 주인이신 주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어도 학생의 영혼은 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진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관심하겠습니까? 방관하겠습니까? 종은 주인을 높이고, 자신을 통해 주인의 역사만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 주제에 “왜 내게 이것저것 안 해줍니까?”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주일학교 교사나 중.고등부 교사들이 쓸데없이 얼마나 교만한지 모릅니다. 자기 사명을 초월해버립니다.

교사는 주인인 주님이 맡겨준 일에 주님이 가장 기쁘시도록 하면 됩니다. 교사에게 ‘나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내가 맡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런 존재감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를 무엇에 쓰겠습니까?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려야 종으로서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대 교사는 종의 위치를 넘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초월하지 말아야 합니다.<계속> 

※2001년 7월 윤석전 목사 <교사세미나> 강의 중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3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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