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37)] 번제단은 ‘피(속죄)의 제단’이다

등록날짜 [ 2011-05-19 09:43:26 ]

‘피’는 생명과 용서의 뜻… 죄 전가의 의미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기억해야

‘번제(燔祭)’는 히브리 원어로 ‘오라’란 말로 ‘올라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단(壇)’은 ‘미쯔하바’, 곧 동물을 학살하다, 죽인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燔祭壇)은 ‘동물이 죽어 올라가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제단은 한마디로 제물을 태워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제를 드리는지 소나 양이 제물인 예를 살펴봅시다. 번제 제물(祭物)로는 흠 없는 짐승 수컷을 준비하여 성막에 들어갑니다. 성막 문 앞에서 자기가 가져온 제물에 자기 손으로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제물에 전가(轉嫁)합니다(레1:3~4). 그리고 자기 손으로 제단 북쪽에서 그 짐승을 잡습니다(레1:11). 그러면 제사장은 그 짐승의 피를  받아 제단 사방에 뿌립니다(레1:11). 그런 다음에 희생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나무에 벌려 놓습니다(레1:6~8).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은 후 제사장은 그 제물 전부를 번제단 위에서 불사릅니다(레1:12~13).

그것들이 완전히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밑으로 쏟아지고, 향기가 되어 올라가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이 됩니다. 한마디로 번제단은 제물을 태워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번제단을 부를 때, 항상 피 뿌림이 있기에 ‘피(속죄)의 제단’이라고 부르며, 어떤 짐승이든지 희생당해야 하므로 ‘희생의 제단’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불로 제물을 완전히 태워서 소각한다는 뜻에서 ‘불의 제단’, 놋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놋 제단’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호부터 이러한 번제단의 여러 가지 의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번제단은 피 흘리는 곳
먼저, 번제단은 ‘피의 제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결한 짐승으로 제물을 삼아 그 제물에 손을 얹고 기도한 후 죽이면서 “하나님, 제가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대신 짐승이 죽습니다. 짐승이 당하는 아픔과 고통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그 아픔이 제 것이요, 그 고통도 제 것이요, 죽음도 제 것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이렇게 죄로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짐승이 대신 흘리는 피를 보시고 제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하고 고백했습니다.

제사장은 그 짐승의 피를 번제단에 뿌립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히9:22).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려야 했는데 그것은 속죄의 완벽성, 철저성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을 만나려면 번제단에서 제물의 피를 흘리고 용서받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공로 앞에 죄를 회개해야 죄 사함받아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예수께서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또 히브리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인간의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히9:24~26).

상한 심령을 내어놓는 회개
이처럼 구약시대 번제단에서 피 뿌림의 제사를 지낸 후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죄를 회개할 때 그냥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때문에 죽으신 주님의 아픔과 고통, 주님의 뜨거운 사랑과 구령의 열정을 내 가슴속에 끌어안고 “이렇게 내 죄를 대신해서 주님이 죽으셨으니 내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부흥회를 할 때마다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부흥회 때 또 그 죄를 들고 와서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죽을 때까지 그 죄를 붙들고 반복해서 회개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도 마음에서 그 죄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생축과 같이 피 흘려 죽으신 아픔을 끌어안는 진실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완전히 없애 버린다고 했습니다(시103:11~14).
다윗이 “아버지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우리야의 아내를 범함으로 득죄하였습니다. 내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하고 양을 잡고 소를 잡고 비둘기를 잡으며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은 형식적인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원했던 것은 ‘상한 심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상한 심령, 곧 죄 때문에 멸망하고 파산할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고 가슴을 찢어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으려고 회개로 나아갈 때는 양을 죽이듯 내가 죽는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붙들고 그 앞에 서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찢기시고 피 흘리신 그 심정으로 자신의 죄를 내놓고 회개하는 자만이 용서받는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피 흘림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목사가 설교하면서 예수의 피를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만이 내 죄를 사하실 분인데 말입니다. 그분의 피만이 생명입니다. 설교는 예수를 말해야 하기에 무슨 설교를 하더라도 예수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야 합니다. 성막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번제단을 바라보는 것처럼 교회에 오면 가장 먼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의 피공로를 만나도록 언제나 예수를 말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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