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41)] 번제단은 회개의 제단이다

등록날짜 [ 2011-06-15 09:21:06 ]

제사를 통해 인류의 죄 대속할 예수 보여
나 위해 피 흘린 예수 바라보며 나아가야

번제단(燔祭壇)은 구약시대 때 죄인이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을 짐승을 성막에 가져와 그 희생 제물의 피를 흘리고 살을 각 떠서 불에 태워 향기를 올려 드리며 하나님 앞에 자신이 그 희생 제물처럼 죽어야 마땅한 자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번제단에서 아무리 짐승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짐승의 희생으로 드리는 제사로는 죄를 온전히 대속하여 제사한 자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는 없었습니다(히9:9~13). 한마디로 양, 염소, 소 등 짐승을 희생해서 드린 제사로는 인간이 지은 죄로 말미암은 영원한 사망을 대신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만일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로 죄를 온전히 속죄받을 수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즉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속죄 받는 회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의 제사를 통해서 먼 훗날 인류를 죄에서 온전히 대속해주실 예수를 희미하게나마 보여주신 것입니다(히12:2).
그런 점에서 구약시대 회개와 신약시대 회개는 다릅니다. 구약시대는 용서(容恕)받는 회개요, 신약시대는 속죄(贖罪)받는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 1만 달란트 빚졌다가 탕감받은 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만 달란트라는 돈은 아무리 일해도 갚을 수 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1데나리온이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인데, 약 6000데나리온이 1달란트입니다. 그러니 1만 달란트라는 돈은 그야말로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입니다. 그런데 1만 달란트를 빌려준 사람이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탕감받은 자가 밖에 나가서 자기에게 고작 100데나리온을 빚진 자의 멱살을 움켜잡고 빚을 독촉하며 옥에 가둬버렸습니다. 1만 달란트를 탕감해준 자가 그 소식을 듣고는 당장 그를 잡아와 일만 달란트를 도로 내놓으라며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1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는 바로 용서받은 자와 같습니다. 용서는 언제든지 그 죄를 다시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속죄는 무엇입니까. 1만 달란트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을 때,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내가 갚아 주겠다”며 1만 달란트를 대신 줘버렸다면 그는 빚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다시 1만 달란트를 내놓으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갚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속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회개는 구약시대 사람들이 받은 일시적인 용서의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내 죄를 영원히 짊어지셨기에 우리는 죄를 완전히 속죄받았습니다. 완전히 자유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내 질병을 대신 짊어지셨고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으며 그분이 내 모든 죄의 짐을 지셨으니 나는 질병과 저주와 죄에서 자유합니다. 예수가 내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깨끗이 대속하신 줄 믿고 내 죄를 십자가 앞에 꺼내 놓으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속죄의 회개입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한 예수 이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선악과를 먹어 죄를 범함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셔서 죄를 깨닫게 하셨고, 또 성막 번제단에서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릴 때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는 이것이 얼마나 큰 소망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제사는 온전한 제사의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릴 때까지 있을 일시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번제단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의 생애는 이 같을 것이라고 약 3700년 전에 지은 성막이 예언하며, 죄를 범한 자가 번제를 드려 죄를 사함받듯, 예수 앞에서 회개하고 속죄함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번제단으로 말미암아 예수만이 우리를 속죄할 분이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도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 사함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도 예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예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만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요14:6).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번제단에서 양을 잡아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듯이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의 피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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