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8-23 11:27:46 ]
육신은 가난해도 영혼은 점점 부유해져야
하나님의 말씀에 더 견고하도록 가르치자
하나님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진 체험에는 실로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다닌 교회는 이웃 마을에 있는 큰 교회에서 분리해 나온 교회였습니다. 당시에는 목사님께서 “윗마을 분은 본교회로 가고, 아랫마을 분은 지(枝)교회로 가세요” 하고 한마디 하시면 성도들이 그대로 순종하던 때였습니다.
저희 마을 사람이 다닌 교회는 한동안 장로님이 설교하셨는데 어느 날 서울에서 목사님이 부임하셨습니다. 교감을 역임한 목사님과 연세대 출신인 사모님이 오셨는데 조그마한 시골 교회로서는 무척이나 과분한 분들이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설교하시자 어찌나 은혜가 넘쳤는지 성도들에게 방언은사, 예언은사, 통변은사, 병 고치는 은사 등 각종 은사가 파장을 이루며 나타났습니다.
성도들은 그런 엄청난 체험을 하자 하나님 말씀에 압도당해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그 목사님이 부임하시기 전에는 주일에도 일했지만, 그때부터는 철저히 주일을 지켰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체험을 하니까 ‘말씀대로 안 살면 안 되는구나’ 하며 내 속에 이뤄진 체험이 말씀대로 살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희 집안도 그때부터 주일에는 절대 일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식구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가 견고해지자 불신자이신 아버지의 핍박도 거세졌습니다.
한번은 장마가 오려던 참이라 아버지께서 주일에 동네 사람을 불러서 일만 평이나 되는 보리와 밀을 거둬들일 계획으로 토요일에 탈곡기 등 각종 농기구를 빌려다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주일에는 절대로 일하면 안 되기에 어머니와 형님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우리 집은 주일에 일 안 합니다” 하고 알렸습니다.
드디어 주일이 됐습니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동네사람이 오면 일 시킬 채비를 단단히 하고 계셨는데 일꾼이 한 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날 일을 하지 못했는데, 그날 밤 늦게 내린 비로 장마가 져서 그해 지은 보리와 밀 농사 일만 평이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속마음이 어땠을지는 가히 상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 꼴이 어찌 됐겠습니까?
제 아버지는 성격이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그 일로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절대로 주일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 말씀이 내 속에 이뤄진 체험에는 어떤 핍박도 이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어머니와 저희 형제를 무섭고 모질게 핍박해도 우리 안에 이뤄진 체험이 안식일은 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목숨 걸고 지키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우리 집은 주일에 절대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해는 이상하게도 꼭 토요일에만 비가 왔습니다.
우리 논이 천수답(天水畓)이라 토요일에 비가 오면 주일에는 모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일을 절대로 안 하니까 그해 가을농사도 망치고 말았습니다. 봄 농사, 가을농사 어느 것 하나 수확하지 못했습니다. 일꾼 사서 김매고 농약 치느라고 빚만 잔뜩 짊어졌습니다. 한 해 농사를 다 버렸으니 집안 사정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때 우리 집안을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저놈의 집구석, 예수 믿다 다 망했네” 하는 소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예수 믿다가 농사는 못 지어 궁핍하게 살았을지라도, 우리 집 식구들은 예수 믿어 영혼이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사진설명> 초등부 세족식 장면.
제 아버지는 어머니를 34년 동안 핍박했습니다. 제사도 안 지내고 주일에 일도 하지 않으니까 동네 어르신들이 “예수를 믿어도 별나게 믿는다”며 핀잔했고, 아버지는 창피해서 동네에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며 핍박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식구들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아버지가 아무리 무섭게 핍박해도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나는 핍박받아도 하나님 말씀은 내게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농사짓는 것보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농사는 한해 양식을 결정하지만, 하나님 말씀과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에 고향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그때 저희 식구들에게 “예수도 별나게 믿는다”고 욕하던 분들이 성회에 참석했습니다. 과거에 저희 집안 식구를 대하던 것과는 아주 다르게 저를 대했습니다.
“어릴 때 예수 믿는다고 그렇게 온 식구가 아버지께 핍박받더니... 하나님께서는 핍박 뒤에 늘 축복을 감춰 놓으신다니까” 하고 웃으시고, “우리 교회 역사가 꽤 긴 데도 목사는 윤 목사 한 사람 나왔는데 ‘한 명이라도 금메달’이야” 하며 좋아하셨습니다.
밀 한 알이 썩어야 열매를 맺듯, 무서운 핍박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생명을 살리는 목회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내게 이뤄지는 체험은 핍박도, 온갖 위협도, 죽음까지도 이깁니다. 말씀만이 살아 있습니다. 영적인 것만이 살아 있습니다. 성령의 체험만이 살아 있습니다. 체험은 이렇게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체험이 없는 믿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어느 날 흔들려 날아갈지 모릅니다.
교사에게는 이처럼 변함없이 자신과 학생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살게 할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그런 체험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계속>
※2001년 7월 윤석전 목사 <교사세미나> 강의 중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