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단물과 쓴물을 구별할 분별력을 갖추라

등록날짜 [ 2011-09-13 15:34:00 ]

회막 뜰 앞 물두멍의 물은 곧 ‘생명’ 의미
온전한 물로 씻어야 하나님 만날 수 있어

하나님께서는 회막 앞에 놋으로 만든 물두멍을 두고 항상 물을 채워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출30:18~20).



회막 뜰에 놓여 있는 물두멍은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알고,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해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를 씻어야 함을 예표(豫表)하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물두멍 속의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단물과 쓴물
야고보서를 보면 물에는 두 가지, 즉 ‘단물’과 ‘쓴물’이 있다고 했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3:8~12).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생명의 물’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이 있는 말씀으로 “나사로야, 일어나라” 하시니 죽은 지 나흘이나 돼서 냄새가 진동하는 송장이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고(요11:39~44),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 하시니 죽은 소녀가 일어났습니다(막5:40~43). 이처럼 우리 입에서도 항상 영혼을 살리는 단물만 나와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의 설교는 생명을 살리는 단물로 넘쳐나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지 못하고 “옛날에 유명한 철학자는 말하기를…” 하고 철학을 말한다면 육신의 귀에는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영혼을 살릴 수 없는 쓴물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2:8).

큰 별이 떨어져 된 쑥물
요한계시록 8장 11절 이하를 보면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니까 쑥이 되더니 그 물을 먹고 죽더라”고 했습니다(계8:11~12). 여기서 ‘별’은 교회의 사자(使者)를 뜻합니다(계1:20). 마지막 때에는 교회의 사자인 주의 종들이 타락하여 그가 전하는 말씀이 살리는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영혼을 죽이는 쓴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말한다고 다 생명의 말씀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단(異端)이 성경을 인용하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씀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궤계에 속아 임의대로 성경 구절을 풀이하니 듣는 자들에게 저주의 쓴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한 때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았으나 사단에게 틈을 주어 사단의 종으로 변질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을 추종하던 수많은 자도 다 이단에 빠지게 하고 말았으니 한 마디로 쓴물, 다시 말해 쑥으로 변한 물을 먹여 그들 영혼을 영원한 지옥 형벌의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는 물론, 듣는 사람들도 자신이 지금 전하거나 듣는 말씀이 영혼 살리는 단물인지 아니면 저주로 이끄는 쓴물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원한 문제이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사람이 극도로 피곤하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합니다. 쓴맛인지, 단맛인지, 신맛인지, 짠맛인지 전혀 구분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도 몹시 침체해 있으면 지금 듣는 말씀이 자기 영혼을 살리는 단물인지, 지옥 멸망으로 이끄는 쓴물인지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내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는 말씀의 맛을 제대로 분별하여 “아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믿음의 감각인 분별력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해서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환상을 보았기에 주님이 그 날 그 시에 온다고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아이고, 내가 속았구나! 다시는 속지 말아야겠다’ 하고 깨닫고 돌이키면 좋은데 금세 말을 바꿔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연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수시로 자신의 계획을 바꾸면 누가 그분을 믿고 따르겠습니까? 성경에 분명히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오직 주님을 맞이할 믿음만 준비하면 됩니다.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자신에게 들려오는 설교 말씀이 쓴물인지 단물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결국 사람에게서 전해지는 말씀을 잘 분별하여 속이는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마24:4).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이 쓴물이냐 단물이냐, 죽이는 물이냐 살리는 물이냐를 잘 분별해서 들을 줄 아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전 재산을 내놓고 그 보화를 자기 몫으로 챙기려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단물인 것을 알았거든 끝까지 그것을 내 소유로 삼으려는 굳은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막 뜰 물두멍에 항상 풍성히 담긴 물처럼, 내 영혼을 살리는 단물인 생명수 같은 말씀과 내 죄를 씻어 거룩하게 하는 예수의 보혈이 항상 심령에 충만히 파도치게 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5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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