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로 이룬 신령한 떡상

등록날짜 [ 2011-10-11 13:14:02 ]

구약시대 제사장들은 떡상의 떡으로 양식 삼아
오늘날 성도들은 신령한 말씀으로 양식 삼아야

떡상이 있는 성소(聖所)는 번제단을 지나고 물두멍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으며, 오직 제사장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안식일마다 여섯 덩이씩 두 줄로 하나님 앞에 진설(陳設)한 이 떡은 제사장이 먹는 양식입니다(출25:23~30;레24:5~9).


<사진설명> 성소 안 떡상.

제사장들은 이 떡상 주변에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교제했습니다. 떡상과 그 위에 진설한 떡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번제단과 물두멍을 거쳐야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입어 죄 사함을 받고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만인제사장이 되어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비로소 교제할 수 있습니다. 구약 제사장들이 성막 안에 있는 떡상에 모여 그 떡을 양식으로 취하듯, 오늘날에는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의 살과 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생명으로 삼는 일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받아 마시라고 할 때 그 당시 얼마나 많은 바리새인이 예수를 힐난(詰難)했는지 모릅니다(요6장). 유대인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말이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하나님,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고 반석을 쳐서 생수를 마시게 한 이적의 하나님을 믿지만, 아무리 봐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는 것은 믿을 수 있어도, 예수를 하나님이 주신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 생명의 떡으로 보지는 못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만찬을 베푸시고 떡을 떼어 주시면서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고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고 말씀하실 때(마26:25~28), 이 소꿉장난 같은 일이 어찌 믿어졌겠습니까? 믿어졌다면 그들은 예수께서 잡히신 후에 절대 도망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예수를 생명의 산 떡으로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이 마가다락방에 임한 이후부터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예수를 생명의 산 떡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는 말씀처럼 성령으로 예수가 나를 위해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시고 그 살과 피가 내 심령의 양식이 되었음을 경험으로 알게 하셨기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예수가 나의 신령한 양식이요, 영적으로 누릴 영원한 기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며,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보다 똑똑하다고 착각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기에 예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남보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영원한 양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작은 머리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이 주시는 믿음으로 이해하고, 체험하여 믿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이룬 떡상
그러므로 예수를 생명의 양식으로 알고 먹고 마시는 자가 누구겠습니까? 예수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자입니다. 말구유 안에 있는 것은 말만 먹습니다. 말에게만 준 말의 몫입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생명의 양식이 되고자 말구유에 오신 주님 앞에서 “주여, 내 심령은 외양간에 있는 말구유보다 더 더럽습니다. 나의 더러운 죄를 사하시고 정결케 하시어 성령으로 내 안에 오셔서 영원히 먹고 마실 신령한 떡과 음료가 되어 주시옵소서!”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안에 이룬 축복의 떡상입니다. 과거에는 성소 안에 떡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우리 심령에 성령이 거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전(殿)이 되어 내 안에 떡상을 이루었습니다.

그때부터 내 안에 있는 예수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어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예수라는 생명의 떡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에게 나타나는 예수의 특성입니다. 예수의 정신과 심정이 내 안에서 터져 나올 때 예수의 능력과 이적과 표적이 나타나며 예수의 생애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생명의 떡을 전하는 자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는 신령한 떡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예수는 생명의 떡을 만들어 내는 공장과 같고, 교회는 그 떡을 나눠주는 떡집이요, 우리는 그 떡집에 속한 소매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떡을 거저주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값없이 먹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이 떡은 무제한 공급될 수 있습니다. 쉬거나 썩지 않고 영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라” 하시면서 누구든지 예수께로 오라고 지금도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 사는 동안 절대 영의 양식과 음료가 없어 굶주리는 자가 되지 말고, 내 안에 진설한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과 잔으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그 신령한 떡과 음료를 수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여, 내 안에 신령한 떡상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 떡을 가지고 나가 만인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위 글은 교회신문 <2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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