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영생하는 떡을 양식 삼으라

등록날짜 [ 2011-11-08 14:10:16 ]

복음의 목적은 기복신앙 아닌 영생에 있어
주님과 나누는 신령한 교제에 초점 두어야

성소(聖所) 안 떡상 위에 진설(陳設)한 떡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6:51)고 하셨으니, 그 생명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요, 영생하는 떡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는 우리 영혼의 때를 위한 영원한 양식입니다.

영생하는 떡을 위한 삶
세상에서도 ‘떡’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먹는 것은, 마시고 입는 것과 아울러 인간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본능(本能)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먹고 마시고 입는 문화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아무리 풍성히 누린다 해도 영생(永生)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생 없는 떡을 얻으려 인생을 투자할 것이냐, 영생이 있는 떡을 얻으려 투자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진설명> 떡상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영생’, 곧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본능적인 욕구가 충족될 것을 바라고, 또 그것을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백 명에게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물어보십시오. 대부분 이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잘 해결되는 것을 복으로 압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부자가 되고,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며, 하는 사업이 잘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기복(祈福)신앙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예수를 잘 믿었지만, 오히려 가는 곳마다 두들겨 맞거나 옥에 갇히거나, 심지어 돌에 맞아 죽은 상태가 되어 내버려지기까지 했습니다. 주님께 “왜 복음 들고 가는데 형통하게 안 해주십니까?” 하고 원망할 만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이 말하는 복을 받았다고 기록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태어나실 때도 초라한 말구유 안에 나셨고, 남의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았으며, 유대인에게 핍박받다가 결국 매 맞고 저주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잔인한 형벌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추구하는 복과 비교하면, 과연 그분이 복 받은 분이었습니까?

또 제자들과 초대 교인들은 어떠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 같은 사람, 복음 전하고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목이 잘리고, 껍질이 벗겨지고, 사지가 찢겨 죽임당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가 복 받은 사람입니까? 세상 안목으로 볼 때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삶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까, 무엇을 입고 살까 하는 것에 생각이 고정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하늘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감히 나의 믿음을 건드릴 수 없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감히 내 신앙생활을 좌절시킬 수 없을만큼 주님과 영적 관계가 확실히 정립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생명의 떡상으로 와 계신다면, 비록 육신은 배고픔이 있다 할지라도 내 영혼은 영원히 주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사는 생명과 영원히 살지 못하는 문화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것과 육신의 것, 하늘의 것과 세상 것, 영생할 것과 영생하지 못할 것을 냉정히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하면, 삶 속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합니다.

예수의 특성으로 나타나는 능력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예수의 성품과 특성, 예수의 생애, 예수의 능력이 나타남으로 세상과 구별됩니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주는 특성을 보입니다. 핍박과 고난이 와도 하늘에 상이 있으므로 기뻐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신령한 떡상을 이루었기에 말씀의 특성과 본질이 언제나 주위 환경과 상관없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예수의 특성이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능력도 나타납니다. 능력은 내 속에 예수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이런 능력은 주님께서 내 안에 오셔서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자에게 드러내시는 것이며, 주님의 특성을 자신에게서 드러내려고 하는 자에게 주는 권세입니다.

예수를 소유한 자의 축복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무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베드로는 자국 나라의 글도 쓸 줄 모르는 무지한 자였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속에는 주님이 함께 계심을 증거하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세상에서는 무시당할 만한 조건을 가졌다 해도 내 속에 예수가 계신 까닭에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담대한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내게 닥쳐오는 고난과 시련 때문에 내 안에서 예수의 특성이 나타나는 일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통해 끊임없이 예수의 특성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의 떡을 가진 자의 축복입니다. 할렐루야!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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