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0-28 02:25:59 ]
교회는 생명의 떡인 말씀이 풍요로운 곳
들어오는 자마다 끝없이 퍼줄 수 있어야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레24:8~9).
하나님께서는 떡상에 놓인 떡을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막에 떡상을 두고 그 위에 떡을 진열해 놓듯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을 위한 생명의 떡으로 주시고 예수의 생명과 말씀으로 풍성한 식탁을 베푸셨습니다.
<사진설명> 성소 안 떡상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성막 안에서 떡을 먹은 것처럼, 우리도 교회에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자유롭게 먹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교회에 와서 영혼이 주리고 목마른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생명의 떡이 최고로 풍요로운 곳이 교회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생명의 떡이 맛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듭니다. 목사는 언제나 성도가 볼 때 먹음직스럽게, ‘아멘’ 소리가 절로 나게, 안 먹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도록 맛있게 떡을 준비해두었다가 주어야 합니다.
사모함으로 취하는 생명의 떡
또 생명의 떡을 먹는 자들도 그냥 먹을 것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떡상 가까이 모여들어서 먹어야 합니다. 진열해놓은 떡이 순간에 동나 버릴 만큼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떡을 주신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떡상을 아무리 정성껏 준비해 놓아도 먹을 자가 없거나, 먹어도 맛있게 먹지 않고 깨작거리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예배드릴 때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고 뒷자리에 앉아서 졸거나 잡담하는 모습을 보면 주님이 얼마나 분하시겠습니까?
흑암 속 영적 굶주림과 죽음만이 난무하던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을 발견하게 하시고, 진리로 오셔서 그 떡이 영원한 생명의 떡임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생명으로 오셔서 그 양식을 먹게 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이 마련한 떡상 앞에 간절히 사모함으로 모여들어 사례(謝禮)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값없이 거저 주는 영생의 떡
교회는 예수라는 생명의 떡이 지닌 가치를 아는 자, 그 떡을 사모하는 자가 모여드는 곳입니다. 생명의 떡 맛을 아는 자, 영적으로 자신이 주린 것을 아는 자가 사모함으로 모여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선하고 살아 있는 신령한 떡상을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떡은 아무리 먹어도 또 배고프고 결국 죽음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생명의 떡은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히 사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도 값없이 그냥 공짜로 가져가라는데 안 가져갈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공짜라고 하니까 믿지 않습니다. 값이 비싸야 좋은 것인 줄 알기에 아무 대가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거저 주셨을까요? 이 생명의 떡은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저 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물(膳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믿음을 선물로,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돈으로 바꿀 만한 것이 아니기에, 우주를 다 줘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큰 것이기에 그냥 선물로 거저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냥 ‘아멘’ 하고 받아먹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받은 자만이 줄 수 있는 생명의 떡
이렇게 값진 생명의 떡을 먹어 내 배가 부르면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싶어서 못 견디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늘나라에 떡상이 가득하기에 그것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교회에도 생명의 떡상이 가득하기에 설교를 통해 끊임없이 그 소식을 전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 이 신령한 떡상이 가득하면, 다시 말해서 은혜가 넘치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서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말은, 내가 성령께 이끌려 다니면서 생명의 떡상인 예수를 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내 안에 떡상이 넘쳐난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한 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아낌없이 생명의 떡을 퍼주고도 계속 남습니다. 아니 퍼줄수록 생명의 떡은 계속 넘쳐납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 믿으세요!”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떡상이 넘쳐나게 하셔서 무제한으로 퍼주고도 모자라지 않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께서도 얼마나 우리 인간에게 이 생명의 떡을 주고 싶었으면 십자가 위에 자기를 내어주어 못 박게 하셨을까요? 하나님 아버지도 얼마나 주고 싶었으면 ‘이 잔이 내게서 비켜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는 아들의 절규를 외면하면서까지 아들을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셨을까요?
성령께서도 얼마나 주고 싶으셨으면 제자들의 순교의 피를 뿌려서까지 이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 하셨을까요?
우리도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생명의 떡을 굶주려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넘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나 자신 속에 신령한 떡상이 풍성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굶주려 죽어가는 수많은 이에게 나눠줄 생명의 떡이 고갈되지 않도록 항상 신선하고도 풍성한 떡상을 준비하여 나눠주되 풍성히 나눠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