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22 15:56:00 ]
교회 내에는 나쁜 영향을 주는 교인 항상 존재
인류 대속물로 오신 예수처럼 철저히 낮아져야
떡상에 놓일 진설병을 만들려면 밀을 맷돌로 갈아 고운 가루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밀을 갈다보면 끝까지 갈아지지 않고 통 밀알 그대로 남은 것이 몇 개씩은 꼭 있습니다. 또 밀 껍질도 어느 정도 갈아지면 더는 갈아지지 않고 거친 상태 그대로 남습니다. 맷돌질이 끝나면 체로 쳐서 통 밀알은 버리고 밀 껍질은 따로 보관합니다. 이 둘은 절대로 진설병을 만드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운 가루만 사용합니다.
<사진설명> 두 여자가 매를 갈아 고운 가루를 얻는 모습
교회 공동체 안에도 하나님 말씀으로 부서지고 갈아져서 고운 가루처럼 되어 주의 일에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가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통 밀알 그대로 있어 어디에도 사용할 데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통 밀알, 밀 껍질 같은 교인
통 밀알 같은 사람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절대 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까지 실족하게 하고 넘어지게 합니다. 통 밀알은 단단해서 잘 갈아지지 않는 것은 물론, 크기도 작아서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통 밀알 몇 알이 바닥에 떨어진 줄 모르고 밟으면, 바로 쫙 미끄러지고 맙니다.
만약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실족했다면, 자신이 통 밀알 같은 사람인 줄 알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의 맷돌에 갈아져서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갈아지지 않고 남은 그 부분이 나를 망하게 하고 남도 해치는 무서운 죄의 담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맷돌로 밀을 갈고 나면 밀 껍질이 남습니다. 이 껍질을 밀기울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적당히 반죽해 썩히면 곰팡이 균이 생겨 누룩이 됩니다. 누룩은 술을 발효하는 데 씁니다. 교회에서도 이 밀기울처럼 썩히는 데 쓰임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시험에 든 사람입니다.
시험 들면 신기하게도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잘 통(通)합니다. 시험 든 사람들끼리 전화해서 모여 교회에 대해 불평불만합니다. 그래서 밀기울을 썩히듯, 시험 든 사람이 나에게 접근하여 불평불만의 소리를 해도 같이 동조하며 썩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깨져서 고운 밀가루가 되라
우리는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말씀의 맷돌로 나를 갈려고 하실 때, 내 속에 있던 자아, 자존심은 물론 온갖 육신의 생각과 소욕이 다 으깨지고 부서져서 고운 가루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통 밀알 같은 내가 하나님 말씀의 맷돌에 으깨지고 갈아져서 고운 가루가 되어 수많은 사람과 성령으로 하나 되는 것이 교회(敎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래 내면에는 부드러운 것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악하게 보이는 사람도 속으로는 ‘앞으로 잘해 봐야 할 텐데... 부모님께 효도 한번 해야 할 텐데...’ 하는 선한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 잘 못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할 텐데... 전도를 더 많이 해야 할 텐데... 주님 기쁘시게 죽도록 충성해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만 그런 마음이 죄의 담이라는 단단한 껍질에 쌓여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 하나님 말씀으로 아무리 감화, 감동을 받아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죄의 담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 껍질이 으깨지고 부서져야 합니다. 껍질 그대로 있으면 내 속에 아무리 부드러운 것이 있어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으깨져서 고운 가루가 된다면, 세상 것은 간곳없고 오직 구속한 주님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만큼 우리가 세상과 분리되기를 바라십니다.
고운 밀가루가 거친 밀기울을 부러워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어 세상과 구별된 자는 더는 세상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죄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려 합니다.
부드러운 밀가루가 쓰임받는다
고운 가루를 만져 보면 얼마나 부드럽습니까? 껍질이 벗겨지고 곱게 갈아진 밀가루는 하얀 것이 부드럽기만 합니다. 하얀 가루를 만져 보면 얼마나 곱게 갈아졌는지 마치 눈을 밟는 것처럼 뽀드득 소리가 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렇게 고운 가루끼리만 있다면 얼마나 화합과 단결이 잘 되고 좋겠습니까? 부드럽겠습니까? 다른 사람 때문에 시험들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고운 가루로 하나돼야 주님께 드릴 귀한 진설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운 가루가 된 사람끼리만 있으면 불순종하지 않습니다. ‘아니오’가 없고 언제나 ‘아멘’만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서 미운 사람, 싫은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내가 하는 일도 좋은 일, 나쁜 일, 싫은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리하옵소서!”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니, 목사님은 왜 그런 일을 나만 시키나 모르겠네!”라고 한다면, “네가 여전히 통 밀알 그대로 있구나. 나는 너를 못 쓰겠다.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겠다” 하고 주님께 버림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교회의 어떤 어려운 일에서 내가 제외됐다면 그것이 자기 생각으로는 아주 용케 빠져나온 줄 알지만, 안 깨지는 통 밀처럼 맷돌의 골로 그냥 빠져나온 것이며, 주님께서 사용할 수 없어 버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부딪칠 때 ‘아멘’ 하고 팍 깨져 고운 밀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나는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통 밀알, 밀기울, 고운 가루 중 어느 것에 해당합니까? 통 밀알 같이 갈아지지 않은 것도 버려야 하고, 껍질도 썩혀져서 술 등을 발효하는 데 쓰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진설병을 만드는 데는 오직 부드러운 고운 가루만 쓰임받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