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06 13:44:49 ]
금 대접, 포도주, 열두 개의 떡은 각각 의미가 있어
세심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의 섭리 깨달을 줄 알아야
“너는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붓는 잔을 만들되 정금으로 만들찌며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찌니라” (출25:29~30).
<사진설명> 떡을 담은 금 대접과 포도주를 담은 병.
성소(聖所) 오른편 벽에 놓은 떡상 위에는 몇 가지 기구가 딸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대접, 숟가락, 병, 잔 이 네 가지입니다.
진설병을 올려놓을 금 대접
먼저, 대접은 금으로 만든 것으로 진설병을 담는 데 씁니다. 이 금 대접을 만드는 데는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는 정금(正金)만 사용합니다. 정금은 금의 순도가 100%여서 불순물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사람도 전혀 사심(邪心)이 없고 오직 주님 사랑하는 마음만 온전히 가져야 함을 상징합니다.
또 금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부식하지 않으며, 금속이면서도 부드러워 기구끼리 부딪혀도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게가 나가서 웬만해서는 가벼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으로 만든 기구는 값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정금으로 만든 금 대접 같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께 올릴 귀한 일을 감당할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포도주를 담을 병
하나님께서는 떡상 위에 병(甁)과 잔(盞)도 만들어 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금 대접에 떡을 담았다면, 병에는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떡은 예수의 살을 상징한다면, 포도주는 예수의 피를 상징합니다. 3700년 전에 만든 성막 안 성소에 놓을 떡상 위에 떡과 아울러 포도주를 담을 병을 준비하라고 하신 것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와서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고자 어떠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진액인 보혈을 인류에게 주시려고 온갖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가야바의 안뜰에서 침 뱉음 당하시고 손바닥으로 맞으시고, 로마군병에게 채찍에 맞으셨으며, 홍포를 입으시고, 가시관을 쓰시는 등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골고다를 오르셔서는 십자가 형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인류를 살리시고자 십자가라는 포도주 틀에서 생명의 포도주가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 안 떡상 위에 이처럼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포도주를 담을 병을 마련해놓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다 부서지고, 다 깨지고, 다 없어져서 오직 주님께 올려드릴 것만 남은 자가 되어야 하고, 주님께 올려 드릴 것만 담을 병(甁)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가리켜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관제는 구약 제사 때, 제물에 포도주나 술, 기름, 피 등을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 관제에 사용하는 포도주는 포도즙 틀에서 포도껍데기가 백짓장처럼 되기까지 액체를 다 쏟아내어서 된 것이니, 사도 바울은 지금 그렇게 자신을 남김없이 다 쏟아내어 주님께 드린바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일원인 우리도 자신을 아낌없이 주께 드려 피의 생명으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12개의 진설병을 두 줄로 올려놓으라
하나님께서는 진설병을 떡상에 놓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레24:5~6). 진설병 열두 개를 한 줄에 여섯 개씩 두 줄로 놓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설병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말합니다. 두 줄은 신약과 구약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맞게 진설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빠짐없이 열두 지파를 모두 받으시겠다는 뜻이니 열두 지파 모두 다 주님의 상에 오를 떡이 되라는 것입니다. 만약 한 개라도 빠지면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은 여리고 전투에서는 크게 승리했지만, 얼마 후 아이 성 전투에서는 어이없이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패배 원인은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아간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탐내어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취하여 땅에 감추었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아간의 가족과 소유물을 전부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이스라엘인이 돌로 쳐 죽이고 불사르고 말았습니다(수7:1~26;22:20). 수많은 사람이 모인 교회에는 아간과 같이 교회 전체를 망하게 하는 일에 빠뜨리는 사람이나 하나님 말씀에 벗어난 요소가 없는지 항상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열두 지파를 다 올려놓듯이 오늘날 교회도 빠짐없이 모든 성도가 똑같은 마음으로 충성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며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떡상 위에 올릴 진설병이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안식일마다 새 것을 올리라
하나님께서는 진설병을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바꿔 놓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7~8).
강단에서 주의 종이 선포하는 설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준비한 말씀, 즉 생명의 떡입니다. 이것을 늘 새것으로 갈아주는 것이 주의 종, 목사가 할 일입니다. 이 떡에는 불순물이 들어가도 안 되고 누룩이 섞여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에는 세상 것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오직 순수한 예수의 살과 피만 그 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누구의 말도 그것이 말씀의 떡, 곧 생명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가 주신 떡, 영생하는 생명의 떡이 설교 안에 있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