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 목자와 양은 분명 다르다

등록날짜 [ 2011-12-13 13:26:41 ]

주의 종을 통해 행하시는 사역 잘 판단해
연조 자랑치 말고 순종하는 자세 갖춰야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초대교회 온 무리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고 안수(按手)하여 직분자를 세웁니다. 바로 초대교회 일곱 집사로서, 오늘날로 말하자면 안수집사나 장로(長老)에 해당합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는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이 임하여 교회가 세워지자 사도들이 안수하여 세운 최초의 교회 직분자입니다. 이들 직분자를 세운 목적이 무엇일까요? 일곱 집사를 택하기 전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놓고 직분자를 세우는 목적을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행6:2~4).

이런 분명한 목적으로 직분자 일곱 명을 세운 후에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쓰니까 초대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더라”(행6:7).

그런데 초대교회와 비교하면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직분자 수가 엄청나게 많은데도 주의 종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에 전무(專務)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왜냐하면, 초신자보다 오히려 직분자들이 더 주의 종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과 언변도 상당히 있는 직분자가 자기 똑똑함과 연조와 교회에서의 입지 조건이라는 힘을 갖고 자기 주장을 펴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듭니다.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초신자는 주의 종의 속을 그렇게까지 썩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분자들은 주의 종의 속을 바글바글 썩이면서도 “교회에서 나 정도만 하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왜 직분자로 세웠는지 그 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책가방 교인과 스스로 하나님 된 직분자
오늘날 많은 이가 교회에만 열심히 다니면 자기가 천국에 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저 책가방 들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대로 될 줄 믿어야 천국에 갑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안 믿고 자기 마음대로 교회만 다니면서 어떻게 영생(永生)하겠다는 것입니까? 진실로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 믿을래야 안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이적을 삶 속에서 매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집안이 삼 대째 장로, 권사 집안이라고 자랑합니다. 연조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교회에서 자기 입지로 어느 위치를 차지한 만큼 권리를 행사하며 자기 마음대로 교회에서 휘둘러 대려고 합니다.
오늘날 이처럼 자기 스스로 하나님 된 직분자들이 교회 안에 꽉 차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교회에서 자기 목소리만 내는 직분자 하나님의 목소리가 다르니 주의 종은 어디에 맞춰 목회해야 합니까?

목자와 양의 관계
목회(牧會)는 목사가 초장(草場)이 어디 있는지, 물 댄 동산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서 양 떼를 끌고 가서 먹게 하고, 마시게 하고, 쉬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에는 직분자가 일어나서 자기들이 양 떼를 이끌고 가려 합니다. 양(羊)이 양(羊)을 이끌고 가니 교회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양(羊)이라는 동물은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앞에 가는 양을 무조건 따라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지면 뒤따라가던 양들이 차례로 다 그 구덩이에 빠집니다. 교회에서도 앞에 가는 아무개 직분자 보고 따라가다가 함께 망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야 합니다. 양이 죽고 사는 것은 목자인 목사가 잘 압니다. 성도들은 양이기 때문에 자기 한계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육관이나 성전 건축을 하려고 직분자 회의를 한다고 합시다. 모든 직분자가 한결같이 건축을 추진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강단에서 “이제 우리 교회는 이번 봄부터 성전 건축을 하겠습니다” 하고 선포를 하려는 순간,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직분자 한 명이 손을 번쩍 듭니다.

“잠깐만요! 올봄에 건축하려면 당장 재정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건축을 시행하면 성도들의 어려움이 심하니까 돈을 모았다가 내년 봄에 건축하면 그동안 재정이 어느 정도 모여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년 봄에 성전건축을 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습니다.”

성도들이 들어보니 그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봄에 당장 시작하기로 한 성전 건축이 내년으로 미루어집니다. 주님의 일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 생각을 주의 종에게 말했는데 왜 너는 네 생각으로 나를 반대하느냐?”고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세상 이치에 합당한 생각이라도 그것이 교회 전체가 정한 생각과 다르거든 내 생각이 잘못인 줄 알고 자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성경은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롬8:6). 직분자 개인의 생각으로 절대로 주의 종과 교회가 계획한 하나님의 일에 제동을 걸지 마십시오. 주의 종을 통해 큰 역사를 이루어 하루빨리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해야 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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