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1-19 17:37:39 ]
가지가 아무리 화려해도 줄기 없이는 의미 없어
세상 온갖 재미에도 변하지 않는 믿음 소유해야
성소(聖所)를 환히 밝히는 등대의 등잔 수효가 일곱이요, 그 일곱 등잔을 받치는 가지와 줄기를 합한 수효도 일곱입니다. 이처럼 구약시대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을 뵈던 거룩한 장소인 성소를 밝히는 등대에 투영된 일곱이라는 수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숫자의 성경적 의미와 해석
성경에는 특정한 수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반복해서 사용하였습니다. 먼저, 수효를 세는 맨 처음 수인 ‘하나’는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는 ‘유일(唯一)한 수’를 의미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는 유일한 분이기에 ‘하나’에 ‘님’자를 붙여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둘’이라는 수는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암컷과 수컷이 상대적으로 존재하듯이 ‘상대(相對) 수’를 뜻합니다. ‘셋’은 ‘온전한 수’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목사와 교회와 성도, 입법과 사법과 행정, 이들은 셋이 하나가 돼야 온전합니다. ‘넷’은 고난을 견뎌내고 얻은 값진 승리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며 고난받으시더니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생하더니 고난에서 나오고, 40년간 광야에서 훈련받은 후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다.
‘다섯’이라는 수는 주로 능력을 상징할 때 사용합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섯’은 세상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일 만에 세상을 지으셨고, 짐승의 표(票)를 의미하는 수도 666입니다. ‘일곱’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절대 능력을 상징하는 ‘완전수’입니다.
위의 내용을 살펴볼 때, 성소 등대의 등잔이 일곱이요, 그 일곱 등잔을 받치는 가지 여섯 개와 줄기 한 개를 합한 수가 일곱인 것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신 하나님, 곧 등대를 지으신 하나님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이요, 빛과 진리와 생명으로 세상을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예수와 떨어지면 생명이 중단된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양의 정금을 들여 꽃받침이 딸린 살구꽃 형상의 잔을 22개나 있게 하여 성소를 밝힐 등대를 아름답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든 등대는 마치 나무처럼 생겼습니다. 가운데 줄기를 중심으로 가지가 우측과 좌측에 각각 세 개씩 붙어 있습니다. 이 가지 여섯과 줄기 하나를 합하면 일곱이 됩니다.
등대의 밑받침은 하나님, 줄기는 예수 그리스도, 가지는 성도를 상징합니다. 한가운데 있는 줄기인 예수를 제외하면, 사람을 상징하는 가지는 여섯 개입니다. 육(六)은 세상을 의미하는 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끼리 아무리 모여도 그 속에는 썩어질 세상 것만 나옵니다. 가지 여섯 개가 줄기 하나에 붙어 있어야 하나님의 수인 칠이 돼서 완전수가 됩니다. 즉 성도는 예수께 붙어 있어야 완전하신 하나님의 보호 안에 살 수 있습니다.
가지인 성도가 줄기인 예수께 붙어서 신령한 말씀의 진액을 공급받지 못하면, 등대의 불을 켤 수 없고, 성도도 생명의 빛을 잃고 맙니다. 교회에서 시험 든 사람은 저희끼리 수군거리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줄기인 예수께 붙어 있지 않아서 생명의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끊어지면 그때부터 잎이 마르면서 서서히 시들다가 결국 최후에는 바짝 말라 죽고 맙니다.
이같이 예수 없이 사람들끼리 육신의 소욕으로 뭉치면 결국 마귀의 앞잡이가 되고 맙니다. 성령 받아 예수께 붙어 있다가도, 예수에게서 끊어지면 세상에 속하고 맙니다. 예수 없이 사람들끼리 만나면 거기서 나오는 것은 육신의 소욕밖에 없으며, 복음을 반대하고 예수를 반대하고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만 자행합니다.
예수에게 붙어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아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진액은 예수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께 보호받고 사는 유일한 길은 예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등대 좌.우측 가지를 정금으로 만들어 아무리 대단하고 훌륭해도 한가운데 있는 줄기에서 끊어지면 등대 구실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내 기분이나 감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라는 가지에 붙어서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하신 것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그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고 했습니다. 우리는 악착같이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육 간의 삶을 유지할 생명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나가서 무엇이든 분별할 신령한 빛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떠나서 세상과 짝하여 세상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기 논리와 이론을 드러내서 주님과 끊어지면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경륜이 높을수록 나무가 크고 가지가 많아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예수는 영원한 생명이시기에 예수께 붙은 자는 절대로 삭정이나 고목이 되지 않습니다. 육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언제든지 가정 중심, 직장 중심, 사람 중심, 환경 중심으로 삽니다. 그러나 주님을 중심으로 생명을 얻는 사람은 직장도, 가정도, 환경도 모든 것이 주님 중심으로 바뀝니다. 우리는 매사를 예수 중심으로 살아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