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9)] 이 땅 최고의 기업으로 주신 직분

등록날짜 [ 2012-02-08 13:28:14 ]

“마리아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나는 사내아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던 시절, 이스라엘에서는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에 맞아 죽든, 불에 타서 죽든 잔인한 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胎)를 예수를 수태하는 데 쓰시겠다고 천사를 통해 알리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당신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아들을 낳는 직분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직분도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 언제든지 불러다 쓰시겠다고 하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로는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자기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려고 했습니까? 주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무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너는 입만 벌리면 거짓말하더구나. 너의 고집을 꺾을 자가 없다. 네 고집으로 네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하느냐?” 추상같은 주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땅에서 큰 재산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이 쓰시겠다는 의지 표명인 직분을 이 땅에서 받는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산상수훈 때 말씀하신 여러 가지 복(福) 중에서 단 한 가지도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없습니다. 전부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기업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직분을 임명하는 순간, “주여, 70억 인구 중에서 나를 쓰시겠다고 찾으셨나이까? 나를 써주시옵소서!” 하며 감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직분을 남용하는 근성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자는 하나님이 절대 그냥 놔두시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이제 왔습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말씀을 떠나서 도전하며 도도하게 살았던 나, 오늘까지 직분을 남용했던 나, 직분 가지고 교회를 마음대로 휘둘렀던 나, 미꾸라지처럼 온 교회를 휘저어 더럽혔던 나, 강단에서 무슨 말을 선포해도 들은 척, 만 척하며 죽은 송장처럼 앉아만 있던 나, 이제 나를 불러서 써주시옵소서!”

주님이 이 고백을 듣고 감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실 때는 병 고치는 일에 쓰고 싶고,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를 쫓아내는 데에 쓰고 싶고, 기도하는 데 쓰고 싶고, 제한 없이 이 일 저 일에 쓰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쓰시려고 직분에 임명하는 순간부터 임명하신 뜻과 상관없이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원수 같은 모습으로 직분을 갖고 있었으니 무슨 염치로 주님을 만나겠습니까?

직분은 목숨을 요구한다
직분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움직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가 가라고 말했으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성경에 직분을 임명받는 순간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한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자기 맘대로 하라는 곳도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시중드는 시녀(侍女)요, 종(從)이요, 일꾼입니다. 나의 의지를 포기하고 주님이 요구하시는 일에 목숨이라도 쓰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 목숨을 쓰시겠다고 할 때 쓰임받기로 결심하는 사람만 직분에 임명받을 수 있습니다.

직분은 명예가 아닙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 장로라는 명예쯤은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합니다. 장로는 명예가 아니라 ‘직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예수라는 직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예수는 “내 백성을 죄에서 건질 자이심이라”(마1:21)고 말씀했으니, 그 예수라는 이름을 완성하려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매를 맞으시고,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그 이름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주셔서 이 이름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을 주신 것은 그 직분으로 우리를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예수라는 직분을 갖고 오실 때 예수라고 하는 이름을 완성하려고 매를 맞고, 저주를 받고, 고난을 겪고, 홍포를 입고, 빌라도 법정에서 죄 없는 자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그 이름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최후에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직분입니다.

그런데 그 잘난 체면, 그 잘난 자존심 때문에 시험에 듭니까? 자기를 시험 들게 하는 이 모든 지식, 체면, 자존심을 끄집어 내버려야 직분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이 무슨 재산이 된다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신 직분을 그렇게 짓밟아버립니까? 자기 영혼이 사는지 죽는지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살려고 예수 믿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직분을 받는 순간에 하나님이 어떤 명령을 하시든지 그대로 움직이리라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교만하기에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목사가 장로, 권사, 집사에게 물어봐서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물어보는 목사가 초라한 것이 아닙니다. 물어볼 때 자기가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대답하는 그가 초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순종할 뿐입니다.

직분이 무엇입니까? 주의 종이 교회에 필요할 때마다 마음대로 불러서 쓸 수 있는 것이 직분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복음을 위해 쓰겠다고 하시는데 시녀인 직분자가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누구의 목소리도 거절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요구는 절대 거절할 수 없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7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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