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2-28 13:05:26 ]
집사 직분을 뜻하는 ‘디아코노스(Diaconsos)’라는 말 속에는 하인(下人)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인은 아랫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즉 윗사람을 시중들려고 준비된 자라는 말입니다. 윗사람이 자유하게 부리게 준비된 사람, 윗사람이 어떤 명령을 할지라도 언제나 순종하려고 대기하는 자가 바로 하인입니다.
하인의 본분을 망각하지 마라
성경에는 하인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먼저 마태복음 8장 5절 이하에 보면,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이 하인에 관해 말한 부분이 나옵니다. 한마디로 하인은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 병이 들자 예수께 사람을 보내서 고쳐주시기를 청했는데 예수께서 직접 오시겠다고 하자 백부장이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다시 사람을 보내 믿음의 말을 전합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하고 말하며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하고 말할 때 그의 믿음대로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디아코노스(Diaconsos) 즉 직분자도 ‘행동하려고 말씀을 기다리는 자, 어떤 말씀이든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자’입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 행동하게 되어 있는 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인의 본분을 잊어버린 직분자들이 한국교회에 얼마나 많은 줄 모릅니다.
“농번기라 몹시 바쁘니 목사님은 논에 들어가서 못줄이라도 잡아주시고 사모님은 부엌에서 밥이라도 해주실 것이지 왜 목사님 사모님은 바쁜 농사철에 그렇게 놉니까?”
시골 교회 직분자들이 농번기 때면 자신의 목사와 사모에게 종종 하는 불평입니다. 그래서 목사 사모를 데려다가 자기 집 논에 못줄 잡으라고 하고, 부엌에서 밥하라 하는 권사 장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 저 왔습니다” 할지라도 “내가 네 집의 못줄 잡아주느라고 고생했다. 내가 네 집 부엌바닥에서 밥 퍼주느라고 고생했다. 네가 언제 내가 보낸 주의 종을 주인으로 인정했더냐? 성령이 세운 교회의 감독자로 인정했더냐?”고 호통하실 것입니다.
직분자가 하인의 도를 넘어서서 주인으로 섬겨야 할 주의 종을 이렇게 마음대로 부려 먹으면서 주인에 관한 감각이 전혀 없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요15:18,23).
그러므로 성도가 주의 종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것은 주님에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의 종을 무시하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인은 주인에게 절대 순종한다
요한복음 2장 1절 이하에도 하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일을 거들다가 포도주가 모자란 것을 알고 예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하자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하인에게 명령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인은 말 그대로 하인(下人)이니 시키는 대로 합니다. 예수께서 하인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인은 “포도주가 필요하다는데 왜 쓸데없이 물을 퍼부으라고 하십니까?” 하고 물어볼 것도 없이 시키는 대로 항아리에 물을 붓습니다.
이렇게 하인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와야 합니다. 이유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는 것입니다. 맑은 물을 연회장에게 떠다 주면 “아니, 이런 못된 놈 봤나? 하인 주제에 이놈이 어디라고 감히 맹물을 떠가지고 와서 연회장을 기만하느냐?”고 호통을 칠 것이 뻔한데 시키는 대로 떠갑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회장이 한 모금 마시더니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하인은 야단을 맞든 말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자기 의견과 자기 의지와 자기 생각이 없이, 오직 주인의 의견과 주인의 의지와 주인의 뜻대로 움직이는 자가 하인입니다. 이것이 디아코노스, 직분자가 지녀야 할 하인의 정신입니다.
하인은 자기 권리를 포기한 자
때로 나이가 많이 든 직분자 중에 목사나 사모가 연륜(年輪)이 적다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나이가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 하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귀한 영혼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겠습니까?
주님의 지식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지식을 인정하는 사람만 자기 지식을 포기하고 주님의 지식에 복종합니다. 자기를 포기한 자만 하인이 됩니다. 그래서 하인은 절대 자기 권리가 없습니다. 설교가 길다 짧다 말할 권리도 없습니다. 벌써 내가 직분을 임명받는 순간부터 나는 권리가 포기된 자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주의 일에 하인 노릇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린 십자가의 피 공로를 아는 사람입니다. 나를 대신해서 지신 십자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사람은 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내 인격을 총동원해서 내게 주신 주님의 은혜를 지식으로 알고, 감성으로 깨닫고, 의지로 결정하여 하인이 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주님의 은혜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인입니다. 신분적으로 계급이 낮은 하인이 아니라, 예수의 피 공로 앞에 압도당한 하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죽기까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나를 지옥에서 건지시고, 죽음에서 살리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 은혜 앞에 울며불며 감사의 고백을 끊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고마움이 끊어진 사람은 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은혜를 망각한 사람은 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젖은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윤석전 목사 강의 ‘직분자세미나’ 중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7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