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13)] 스스로 높아지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

등록날짜 [ 2012-03-06 18:12:16 ]

충성의 자랑을 내려놔야 영광받으시는 주님
순종만이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담력 얻어

디아코노스 즉 직분자는 하인(下人)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내 죄를 사해주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그 공로를 기억하는 사람만 교회의 하인(下人), 곧 직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인인 직분자가 주님을 도전하고 교회를 마음대로 움직여 갈 때, 직분을 명예로 알고 교회를 좌지우지하면서 상전이 되려고 할 때 과연 주님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죄 때문에 죽었는데 네가 나를 또 죽이느냐?”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 직분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공로를 잊어버린 자입니다. 주님의 피 공로를 잔인하게 저버린 자이기에 이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단 한 군데도 직분 남용자를 방관한 적이 없습니다. 엘리사의 하인 게하시는 직분을 남용하다가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왕하5:27). 게하시가 직분을 남용한 죄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서 낫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엘리사가 활동하던 당시에 북이스라엘은 아람 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려 애를 태우던 중 자기 집에서 일하는 이스라엘 계집종의 말을 듣고 능력 많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런 아람 나라 최고 장군이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먼 길을 찾아왔는데도 엘리사는 문밖에도 나와 보지 않고 하인을 보내서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전할 뿐입니다.

나아만이 보니 건방지기가 짝이 없습니다. “아니, 이런 무엄한 놈을 봤나? 내 생각에는 나와서 내 몸을 어루만지면서 고쳐 줄줄 알았더니... 우리나라에는 요단 강만한 물이 없더냐. 그보다 더 좋은 강이 얼마든지 있지 않으냐. 가자” 하며 분을 내며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 합니다(왕하5:11~12).

나병을 고치러 온 주제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마차를 돌리려 하자 그의 종들이 설득합니다. 그보다 더한 일도 해야 할 판국에 그런 쉬운 일을 못하느냐고 말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 낫는다는 말에 자존심을 꺾고 요단 강으로 갑니다. 나아만을 태운 으리으리한 병거가 요단 강 앞에 섰습니다. 계급장을 달고, 전쟁에 승리한 훈장도 달고, 으리으리한 금마차를 타고 온 것입니다.

우선 나아만은 그 으리으리한 금마차에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먼저 금마차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직분은 금마차가 아닙니다. 당신을 쓰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나아만이 금마차에서 내려오는 것은 교만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다음으로 군대장관의 투구를 벗었습니다. 즉 계급장을 내려놨습니다. 당신의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오직 순종할 뿐입니다. 그다음은 훈장이 붙은 옷을 벗었습니다. 직분은 훈장도 아닙니다. 이제는 내 훈장도, 내 의도 간 곳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살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뿐이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속옷까지도 벗었습니다. 그렇게 다 벗고 나니까 나균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푸르죽죽한 피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당신의 직분의 껍데기를 벗겨보십시오. 당신 속에선 영적인 나병환자의 모습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나아만은 선지자의 말대로 요단 강에 들어가야 합니다. 지금 나아만의 하인들은 요단 강 밖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위대한 군대장관 나아만이 하인들보다 더 낮은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드디어 초라한 몰골로 물속으로 한 발씩 들어갈 때, 강가에 선 자기 부하들의 건장한 체격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직분을 갖고 충성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요단 강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나병환자 같은 자임을 잘 알아서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내가 교회에서 어떤 직분이라는 계급장을 다 떼고, 내가 교회에서 무엇했다고 하는 훈장도 다 떼고, 내가 충성해서 교회가 이렇게 부흥했다고 하는 건방진 훈장도 다 떼고, 이제는 나병환자 같은 문드러진 나의 몸을 이끌고 무릎 꿇고 엎드려 주님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순종해야 입니다.

나아만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요단 강에서 일곱 번 목욕했을 때 나병에서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직분에 순종하는 자는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얻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3:13).”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는 어찌하여 하인인 직분자가 상전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목사가 무슨 일을 하려면 아무개 권사, 아무개 장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보십시오.

주님이 “네 생각대로, 네 형편대로 목사에게 말했느냐? 그러면 네가 하나님 행세한 것 아니냐? 네 말을 듣고 목사가 움직였으니 네가 하나님이 아니냐? 너희 교회는 내가 움직여 본 사실이 없다. 오늘까지 20년간 네가 움직였어. 네가 하나님 노릇 했어.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둘이 있을 수 없다. 나 혼자 족하니라” 하실 때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직분을 남용한 자들은 첫째, 예수의 피 공로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셋째, 자기가 얼마나 죽게 된 인간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직분 때문에 망하는 자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직분 때문에 면류관을 얻고, 아름다운 지위를 얻고, 하늘의 영광이 충만해야지, 직분 때문에 자기 영혼을 파멸로 내던지는 저주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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