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3-29 14:11:38 ]
이 땅에서 받는 상은 썩어지고 없어질 것뿐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상을 얻는 자 되자
디아코노스(diakonos), 즉 직분자는 교회의 하인입니다. 하인의 특징 중 하나는 보상(報償)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 9절에 보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從)에게 사례(謝禮)하겠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하인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하인인 직분자는 교회에서 아무리 힘든 일을 했더라도 결코 보상(報償)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맡은 바 직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집사, 권사, 장로들은 교회 앞에 피아노 한 대만 해놓아도 만장 앞에 광고해주기를 바라며 보상받으려고 합니다. 충성하면 목사가 등 두들겨 주고,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아무개 집사님, 수고했습니다” “아무개 권사님, 수고했습니다” 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등 두들겨주고 머리 쓰다듬어주면 우쭐해서 목이 빳빳합니다.
우리 속에도 그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칭찬해주지 않으면 시험 들지 않습니까? 하인임에도 주인에게 대듭니다. 하인임에도 못해 먹겠다고 직분을 팽개치고 가버립니다. 그러니 직분으로 복을 받기는커녕 심판받을 일만 잔뜩 만듭니다.
하인에게는 위로(慰勞)가 없습니다. 교회 일이 잘되는 것이 위로이며, 주의 일이 잘되는 것이 위로입니다. 여기에서 위로를 받아야지, 개인적으로 교회에 무엇을 해놓고 칭찬으로 위로받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오래 믿은 사람치고 하나님 속 안 썩이고, 목사 속 안 썩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오래 믿으면 오래 믿을수록 하인의 자세로 내려가고, 주님을 알면 알수록 하인이 되어야지, 왜 주님을 안다고 하면서 주님보다 높아져서 자기 마음대로 교회를 휘두르려 합니까?
교회에서 목사와 문제를 일으키고 목사를 강단에서 끌어내리는 사람들이 초신자입니까? 전부 오래 믿은 교회의 터줏대감들입니다. 교회를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목사가 하나님 말씀대로 움직이니까 “왜 전통을 깨느냐? 우리 마음대로 하겠다” 하며 결국은 목사를 내쫓고 맙니다. 그러고서 자기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목사를 세웁니다. 이들이 영혼의 때에 어디에 가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직분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인은 무익한 종이라는 자세 지녀야
일꾼에게는 삯을 주어 보상합니다. 그러나 하인에게는 보상하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습니다. 잘하지 못하면 책망만 받을 뿐입니다. 하인은 절대 의무와 절대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명령을 받은 대로 행한 후에 잘했다고 칭찬받으려 하지 말고,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눅17:10). 주인을 위해 할 일을 해놓고도 “내가 할 일을 한 것뿐인데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하는 마음을 지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 조금만 무슨 일을 해도 높여주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직분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죽도록 수고하고도 ‘일한 것이 없는 무익한 종’이라는 하인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교회에서 아무런 불평불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고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불편함이 있는 것입니다. 직분자의 마음속에서 이런 보상 심리가 완전히 무너져야 합니다.
주님과 상대할 인격을 지녀야
어느 교회에 갔더니 어떤 권사, 어떤 집사가 교회 의자를 해놓았다고 의자마다 명패를 붙여 놓았습니다. 의자보다 명패가 더 값나가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교회에 의자를 해놓고 의자에다 자기 비석을 세웁니다. 비석을 세우려면 자기 마음속에 ‘나는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고,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자이나 나 같은 자를 살리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구원의 비석을 세우십시오. 그 은혜가 있다면, 어떻게 교회에 의자를 해놓고 거기에 비석을 세우겠습니까?
그 큰 은혜를 입었으니 조그마한 것 해놓은 것이 송구해서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더 못해서 무익한 종입니다. 더 못해서 죄송합니다” 해도 시원찮을 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 비석을 세우기 바쁜 사람과 주님이 상대하고 싶겠습니까? 이런 무인격자와 주님이 상대하고 싶겠습니까? 직분자는 하나님과 상대할 인격을 지녀야 합니다.
직분의 상은 하늘에서 받아야
‘그래도 사람이 그 정도로 교회에서 일했으면 표창할 만하지 않습니까?’ 하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는 아무도 상 받을 자가 없습니다. 오직 상 받으실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뜬 다음에 하늘에 가서 내 영혼이 상을 받아야지, 이 땅에서는 상 받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땅에서 받으면 하늘에서 받을 보상이 없습니다(마6:2).
그런데 이 땅에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기에 교회에서 불평불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목사님은 아무개만 사랑하고, 아무개네 집만 심방 가고...” 하며 아무것도 아닌 사사로운 일 때문에 “나 기분 나빠서 교회 못 가겠다”고 시험에 듭니다. 이런 별일 아닌 것 때문에 지옥 가기로 결심하고 천국에서 돌아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이 사람은 예수를 왜 믿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인에게는 보상 심리가 없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 직분자에게 이 보상 심리가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없어야 주의 종이 마음대로 직분자에게 주의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