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23)] 섬김의 끝은 십자가를 지는 신앙이다

등록날짜 [ 2012-05-22 11:50:43 ]

‘십자가’는 남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  
이웃 영혼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 가져야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올라가 피 흘려 죽기까지 내 죽음을 대신 짊어지셨듯이, 직분자도 교회에 무슨 일이 생길 때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죽기까지 섬기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십자가’가 무엇인지조차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제가 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하고 하소연하기에 “어떤 십자가가 그렇게 무겁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남편이 예수 믿는다고 얼마나 핍박하는지 모릅니다.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그냥 핍박받는 것이지 ‘십자가’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 가난합니다. 가난의 십자가가 제게 너무 버겁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것도 ‘십자가’가 아니라 그냥 가난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가 무엇인지 모르고 엉뚱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섬기면 영광스러운 직분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직분자가 져야 하는 십자가가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알아봅시다.

남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이 십자가
‘십자가’는 남의 죄를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죄가 전혀 없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죄인이라는 누명(陋名)을 뒤집어씌웠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인류가 지은 죄를 뒤집어쓰고 죄인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입을 열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어느 권사가 그 죄를 뒤집어썼다고 합시다. “권사님! 왜 그런 짓을 했습니까?” 하고 교인들이 힐난하면 대번에 “내가 언제 그런 짓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 집사가 한 것을 뻔히 보고도 제게 엉뚱한 소리 하시네요!” 하고 따지려고 들지, 자기가 했다며 죄를 뒤집어쓰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 직분자로서 어떻게 남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섬긴다는 것은 묵묵히 누명을 쓰는 것
우리는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섬긴다고 하는 것은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이 남의 죄를 짊어지고 사람들이 “너는 죄인이다. 너는 죽일 놈이다” 해도 자기가 죄지은 자처럼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교회에서 도둑 누명을 썼다면, 금세 입을 열어서 “나는 아닙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아무개가 그랬습니다” 하고 죄인을 밝히려 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명을 쓰면 그냥 그대로 꼭 뒤집어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남편의 핍박이나 술주정이나 가난은 ‘십자가’가 아닙니다. 순전히 남의 죄를 고의로 대신 짊어지고 나는 죽고 그를 살리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섬기는 것입니다. 직분자라면 누구나 이런 섬김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 죄가 없는 자가 완전히 죄인 취급당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십자가 지는 이가 없으니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자기 혼자 짊어지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많은 성도에게 상처를 줍니다.

“누가 그랬어? 김 집사가 그랬어? 박 집사가 그랬어?” “아니, 왜 그렇게 무고한 말을 하십니까?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하면서 서로 말을 좋지 않게 전하고 이간질해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으며 교회가 술렁거립니다.

이런 교회에 무슨 섬김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자기가 죽기까지 죄를 짊어지고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무슨 죄가 있기에 당신의 죄를 대신 짊어져야 합니까?

십자가 없는 교회는 섬김 없어
주님이 십자가를 짊어지실 때 그냥 짊어지셨습니까? 모진 고초를 다 당하셨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나님의 아들이냐?” 하면서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고 두들겨 팹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매를 맞아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입을 열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끝까지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고 맞으셨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두들겨 맞아도 남의 죄를 들추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며 그를 섬길 수 있습니까? 매질을 참는 것은 고사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면서 말을 옮기고, 네가 옳네, 내가 옳네 한다면 그가 무슨 십자가를 짊어진 사람입니까?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섬김이 없는 교회입니다. 섬김이 없는 교회는 직분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만약 직분자가 그 직분으로 이같이 섬기지 않고 십자가를 지지 못한다면, 그는 하늘나라에 가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예수 믿습니다. 직분은 누명을 쓰고도 말하지 않고, 이웃 영혼이 살도록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섬기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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