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자의 자세와 역할(32)] 생명이 약동하는 복음의 일꾼

등록날짜 [ 2012-08-07 13:44:15 ]

믿음으로 나타나는 능력 넘치면 교회는 활기 차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약동하도록 기도해야

직분자는 복음(福音)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뽑혔으면서도, 실상 자신이 복음을 만나보지 못해서 복음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얼마나 무지합니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저 교회에 오래 다닌 연륜으로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자가 됐습니까? 직분을 오해하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자는 교단의 교리(敎理)를 지지하기에 앞서 성경을 지지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경을 지지하는 자와 함께 일하십니다. 성경을 지지하는 자에게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의 일꾼이 복음을 모른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병 고치는 능력,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아무에게든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능력은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도 없으면서 직분자라고 말합니까? 복음의 일꾼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마네킹이나 박제(剝製)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무서운 호랑이라도 그것이 박제라면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껍데기는 예수 믿는 사람인데 그 속에 예수가 없다면, 그 속에 복음이 없다면, 그는 죽은 일꾼이요, 박제와 다름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직분자 중에는 이처럼 박제 일꾼이 많습니다. 직분자는 먼저 자기 속에 생명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에 활기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라면 예수 생명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복음을 지지할 믿음을 달라고, 내 안에 복음이 살아서 약동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복음의 일꾼입니다.

영혼을 향한 불타는 사랑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복음을 어렵게 믿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 중 더러는 “예수 믿기 어려워서 못 믿겠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면 예수 믿는 일보다 쉬운 일이 없습니다. 안 믿으려 하니까 어렵습니다. 믿으려고 결심하면 아주 쉽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하고, 둘째 자기 안에 복음이 있어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초대교회에서 안수하여 세운 집사 중 한 사람인데, 마음속에 복음이 불탔습니다. 속에서 불타는 복음이 스데반 집사를 불끈 들고 나갑니다. 지금 예루살렘 거리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일 정도로 살벌한데도 스데반 집사는 민간(民間)에서 복음을 전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유대인이 스데반을 잡아다가 공회에 넘겼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대제사장 앞에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했습니다.

“너희는 조상 때부터 선지자를 죽이고, 비석을 세우며, 너희 의를 주장해 왔다. 너희는 너희 조상 때부터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짓을 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고 착각하지 않았느냐?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였다. 하나님의 아들은 너희가 지은 죄 때문에 죽었다. 너희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죽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를 바란다.”(행7장)

이처럼 스데반 집사는 자기 동족 유대인에게 애절하게 예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볼 때 예수는 나사렛 목수 아들인 주제에 자칭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신성을 모독한 죄인입니다. 그리고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으니, 유대인을 창피스럽고 부끄럽게 한 죄인이요,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행위가 마땅한 일이라고 유대인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인이다” 하고 말했으니 스데반 집사 역시 신성을 모독한 죄인으로 보였습니다. 그러기에 공회에 모인 자들이 스데반 집사를 성 밖으로 내쳐서 일심으로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기가 당하는 고통과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동족 유대인에게 예수 믿으라고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기 육체를 복음 전하는 일에 써버렸습니다.

그가 돌에 맞아 죽어갈 때 유대교를 믿는 자들은 한 사람도 애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죽어 마땅한 사람, 미친 사람 취급했을 뿐,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 우편에 서서 스데반에게 관심과 지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가 죽었을 때 그 영혼을 맞이했습니다.

직분자라면 이렇게 주님을 감동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천국에 입성할 때 이런 정도는 주님께 영접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영접을 받기 위해 우리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충분히 감당해야 합니다.

복음에 목숨을 버리는 자
복음 때문에 초대교회 집사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빌립도 초대교회 집사였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국고를 맡을 만큼 권세가 있던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며 성경을 읽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를 모릅니다. ‘누가 이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 줄꼬?’ 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급히 인도하셔서 내시 앞에 떡하니 세우셨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필요할 때 이렇게 급하게 인도하여 쓰십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으로 복음의 일꾼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일꾼 되는 것이 직분자입니다.

직분자는 미친 듯이 예수를 말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쉼 없이 말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표적이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계속 복음을 말하면 그 집에서 질병도 떠나가고, 문제도 해결돼서 ‘과연 예수는 살아 계시다’는 증거를 하나님께서 기어이 보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자가 복음의 일꾼입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3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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