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8-14 10:10:07 ]
지성소 법궤 돌비석은 곧 ‘하나님의 다스림’ 의미
말씀을 심비에 새긴 우리도 성령으로 지배받아야
<사진설명> 법궤에 둔 돌판 두 개.
법궤(法櫃) 안에는 하나님 말씀을 새긴 돌비석만 넣어두었습니다(출25:16,21). 곧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돌비석만 넣어두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장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글만 들여놓는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심령에도 하나님 말씀만 기록되어야 우리가 주님 안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이 가득 쓰여 있다면, 절대로 주님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하나님 말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블레셋에게서 지켜 주시려고 나실인 삼손에게 엄청난 힘을 주시고, 그 힘의 근원인 머리털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삿13:5). 그러나 삼손은 블레셋 미인 들릴라의 무릎에서 녹아나고 말았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느냐고 들릴라가 몇 번 물어볼 때까지만 해도 삼손의 마음속에는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어 들릴라에게 힘의 근원을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들릴라가 물어보고 또 물어보니까 그만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서 스르르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말씀이 희미하다가 아예 지워지면 순간에 망하고 맙니다.
그러니 내 심령에 새긴 하나님 말씀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왜 종이나 양피가 아니라 돌에다 하나님 말씀을 새겼겠습니까? 오래도록 지워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 돌비보다 심비가 더 오래갑니다. 아니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이 지워지지 않게 생생하게 심비에 새겨야 합니다.
“노아야, 방주를 지어라”(창6:14). 노아는 수없는 날 동안 방주를 지으면서도 하나님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방주 건축을 반대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또렷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목소리를 아무도 지울 수 없을 만큼 또렷하게 심비에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다 지은 다음에 사람들에게 홍수가 나니 방주에 타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도 아무도 그 말을 심비에 기록하려 하지 않았기에 결국 다 죽고 말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심비에 기록한 노아네 식구만 살았습니다.
내 속에서 나와야 할 것
말을 들어보면 그 발화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에 쓴 것이 말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약3:4~6).
한마디로 내 속에 잘못 써 놓아서 그것이 나오면 내 영혼을 죽이고 맙니다. 우리가 마귀에게 속하면 마귀는 자기 것을 우리 심령에 씁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면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이 하나님께 속해서 나오는 말인지 마귀에 속해서 나오는 말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쓴 비석은 지워 버리고 하나님이 쓰신 비석만 있게 만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비석에만 하나님의 법을 새기기에 하나님의 비석만 하나님의 법궤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도, 전도도, 믿음도 심비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제까지는 옥토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새겼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황무지로 바뀌어 잡초가 무성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성경에 기록한 씨 뿌리는 비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밤새도록 마귀가 가라지를 뿌렸구나. 마귀가 내 심비에 가라지를 뿌리지 않게 주님만이 씨를 뿌리시옵소서. 주님만이 내 심비에 글을 쓰시옵소서. 당신이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하고 결심하며 과거를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법궤를 가진 자의 축복
성경은 법궤를 만들되 순금으로 안과 밖을 싸서 만들고, 그 법궤 위에 속죄소를 얹고 그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모세에게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25:2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법궤가 있는 곳에서 역사하십니다. 한마디로 법궤가 있는 지성소에서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지성소를 낱낱이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히9:3~5). 그 영적 의미가 크고도 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궤를 둔 이런 지성소가 실제로 내 안에 이루어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상상 속의 천국, 상상의 믿음을 가지려는 자가 아닙니다. 실제로 천국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이여, 내 속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내가 나를 잘 압니다. 오늘까지 내 속에 세상 것이 가득 들어서 그것이 왕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내 안에 왕이 되신 주님 말씀의 법으로 살게 하옵소서. 그 말씀이 주신 능력으로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살게 하옵소서. 나를 백 프로 당신만이 인도해 주시고 내 심비에 기록된 말씀대로 나를 움직여 주시옵소서”라는 고백이 넘쳐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0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