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세미나(7)] 하나님 앞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

등록날짜 [ 2013-12-31 10:19:21 ]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예수 없이는 모두 죄인일 뿐
개개인이 각각 회개하고 구원의 징표로 침례 받아야



구약시대에 노아의 가족이 받은 가족적 침례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민족적 침례는 육적인 구원을 위한 침례였습니다. 침례를 상징하는 구약의 이 두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이와 같이 구원하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잡아 피를 흘림으로 재앙을 넘고 홍해를 건너 민족이 구원을 받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만나 영혼이 구원받고 침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홍해 사건은 곧 내가 죽음과 저주에서 구원받은 나의 사건입니다.

우리는 과거 성경 속의 사건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나의 사건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아가 하나님 명령에 순종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하나님 말씀만 믿고 순종함으로 나아갔듯이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예수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 침례 요한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3:3~9).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와 마리아의 언니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이종사촌 형입니다. 그는 유대인에게 침례를 주었을 뿐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였습니다.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자, 그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주면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이 “회개하라”라고 외치는 것은 “이제 양이나 비둘기를 잡는 일이 사라졌다. 양을 잡을 필요가 없고, 비둘기를 잡을 필요가 없고, 소를 잡을 필요가 없다. 죄를 들고 회개할 때 그 죄를 위해 짐승 대신 어린양처럼 죽으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것이다”라고 예수의 오심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짐승 대신 속죄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이 “예수의 길을 평탄케 하라. 예수가 가는 길을 열라”라고 하는 것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갈 것이니 그 길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3:3).

침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죄를 내놓으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입니다. 그런데 당시 바리새인들은 침례 요한이 아무리 회개하라고 말해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율법을 다 지켜서 죄가 없기에 회개할 것이 없고,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다는 말은 자신들이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더 세분화시켜 그것들을 지키며 자신들의 의를 내세우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오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하나도 없고, 의로운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갈3:11).

도리어 성경은 누구든지 모든 율법을 다 잘 지키다가 한 가지라도 범하면 다 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약2:10~11). 그러므로 인간은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는 자기 죄를 깨달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기능을 ‘정죄의 직분’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3:7~9).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침례
요한은 요단 강에서 두 가지 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침례를 주고 있었습니다. 먼저는 유대인들이 죄를 발견하고 “나는 이렇게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라고 회개케 하기 위한 목적으로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침례 요한이 “독사의 자식들아! 속에는 독을 품고 있는 죄가 가득한 자들아! 왜 회개치 않느냐?”라고 무섭게 말할 때, 회개하는 자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물속에 잠겼다 나오면서 자신이 죗값으로 죽을 죄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베푼 침례는 죄에서 회개를 요구하는 침례였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했을 때, 제사장이 “회개하라”라고 하면 즉각 양이나 소나 비둘기를 잡았습니다. 양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여호와여, 내가 이 양이 죽어 가듯 이렇게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며 자기 손으로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담은 사발을 제사장의 손에 들려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그 짐승의 핏사발을 보이면서 “하나님, 내 백성이 이렇게 피 흘려 죽어야 할 만큼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 죄 때문에 이 양이 대신 죽었사오니 이 피를 보시고 내 백성을 용서하소서” 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선지자인 요한이 “회개하라” 할 때는 더 이상 짐승이 죽을 필요가 없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와서 침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침례를 받으며 물속에 잠길 때, “물속에 잠기듯이 나는 이만큼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과거에는 양처럼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었고, 이제는 내가 죗값으로 틀림없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회개의 침례가 유대인들이 받은 침례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자기 죄를 발견하여 자신들이 죽게 된 인간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서 자기 죄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 죄를 움켜쥐고 나와서 “나는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지어 이렇게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침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라는 말은 “네가 얼마만큼 죽을 죄인인가를 네 몸으로 자백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모든 죄의 대가는 그 죄의 경중과 상관없이 사망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든지 그 죗값으로 죽어서 무덤 속에 들어가야 하고, 지옥에 들어가야 할 만큼 큰 것이 죄입니다. <계속>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윤석전 지음)

위 글은 교회신문 <3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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