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7)] 돈이 나를 부려먹지 못하게 하라

등록날짜 [ 2014-01-21 09:19:00 ]

오직 내 영혼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복 되도록
물질의 노예로 살지 않는지 자신의 모습 돌아봐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1~2).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르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바로 뒤이어 ‘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돈, 즉 화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합니다. 화폐 가치에 따라 물건값이 매겨집니다. 이때 돈으로 나타난 가치를 가격(價格)이라고 합니다. 가격이 매겨진 만큼 돈을 내면 그 물건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화폐가 생겨나자 물건을 편리하게 사고팔게 됐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상거래를 편리하게 할 목적으로 화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화폐는 가치 있는 대상을 소유하는 수단으로 변질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축적하려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를 누리는 삶을 동경하다 보니 돈이 점점 절대 가치를 지닌 존재로 굳어졌습니다.

돈의 가치를 최고로 두는 때
성경을 보면 돈을 사랑하다 망한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예이며(요12:4~6), 바리새인도 돈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눅16:14).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께서 감동하신 바를 무시하고 땅값 얼마를 감추고 성령을 속이려다가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났습니다(행5:1~11).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국가나 사회 등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가 어찌 되든 돈을 많이 움켜쥐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황금만능주의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돈에 따라 움직입니다. 가치관을 돈에 두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돈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돈을 사랑한다”라는 말은 돈의 가치 기준을 최고로 두는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요즘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지금이 바로 마지막 때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유흥비를 벌 목적으로 청소년이 성매매를 하고, 보험금을 타낼 목적으로 남편이 아내 목숨을, 자식이 부모 목숨을 앗아갑니다. 욕심에 휩싸여 방향 없이 달음질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니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성도를 움직일 최고 능력은 무엇일까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하나님 말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나를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입만 벌리면 하늘에 소망을 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상 그 사람이 돈에 얽매여 사는 모습을 보면 빈말인 것이 드러납니다. 어떤 사람이든 조금만 겪어 보면 소망을 하늘에 뒀는지 땅에 뒀는지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하늘에 소망을 어느 정도 두는지 답이 나옵니다.

변치 않는 돈의 가치 기준
“하나님 앞에 예물 많이 하세요, 어차피 죽으면 다 드리고 갈 것인데 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믿음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속뜻을 가만히 되짚어 보면, 살아 있을 때 쓸 만큼 쓰고 죽으면 쓸 일이 없으니까 죽기 직전에 드리겠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과연 이 사람이 죽을 때 하나님께 다 드리고 죽을 수 있을까요? 십중팔구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살아 있을 때나 죽음이 임박할 때나 그 사람이 돈에 거는 가치 기준은 같기 때문입니다. 돈에 집착이 강할수록 죽음을 앞두면 돈에 애착을 더 둡니다. 죽음이 닥치면 자녀 걱정으로 어떻든 자기 재산을 그들에게 남겨주려고 합니다.

한 번 돈에 사로잡히면 죽을 때까지 헤어나지 못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상과 면류관 받을 일에는 돈이 방해꾼입니다. 이런 방해를 이기고 자기 물질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다면 큰 복으로 알아야 합니다.

돈 때문에 영생을 포기한 사람
성경에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대답하시자 그 청년이 어떤 계명이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그 모든 계명을 지켰다며, 아직 무엇이 부족하냐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 계명들을 지키는 일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구제하는 일에 돈이 들어가도 자기 명예를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면 지출이 아니라 오히려 수입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청년에게 이르셨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 청년은 이 말씀 앞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근심하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마19:16~22).

이 사람이 과연 영생을 아는 사람일까요?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라고 물었으니 그 방법을 말해 주었다면 순종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얻고자 온 자가 아닙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고 구제했으므로 만약 영생이 있다면 내가 바로 영생할 사람이지 누가 영생할 사람이겠습니까?” 하고 주님께 점검받으려 했을 뿐입니다. 정말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께 왔다면, 그 방법을 가르쳐 줬는데 그렇게 뿌리치고 가지 않았을 터입니다.

이처럼 많은 돈을 지닌 것도 때로 주님을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합니다.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돈이 하늘나라 가는 일에, 하나님과 관계하는 일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일에 방해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주님을 섭섭하게 하면 안 됩니다. 오직 내 영혼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복되게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 뜻을 좇아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돈을 그렇게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지금 바로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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