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의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제물 위에 안수하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라

등록날짜 [ 2012-10-23 09:59:05 ]

번제물을 직접 자신이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처럼
오늘날도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며 주님께 예배해야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제사 지낼 때 사용한 희생 제물(祭物)은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모형(模型)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선지자인 침례 요한이 요단 강에 침례 받으러 들어오는 예수를 향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1:29) 하고 외칠 때, 비로소 그 실상(實像)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화목 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
구약성경에 나오는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할 희생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그 아들들이 출생해 부모가 훼손한 하나님과 신령한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나님께 제사할 때, 아벨이 드려 하나님께서 열납하신 제물이 바로 어린양이었습니다(창4:4).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 할 때, 이삭이 번제할 제물이 어디 있는지 묻자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하였습니다(창22:8).

또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오려 할 때 바로가 보내주지 않자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장자가 죽는 마지막 재앙을 내릴 때 죽음의 사자가 넘어가게 하려고 이스라엘 사람 집집마다 문설주에 바른 것이 바로 어린양의 피였습니다(출12:22~23).

그리고 주전 700년경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러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이 예언대로 예수께서는 어린양처럼 인간을 위한 화목 제물로 오셔서 죽으셨습니다(롬3:25~26).

신약성경에도 바울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고 말했고, 베드로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1:19)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죄를 전가(轉嫁)하는 안수
이렇게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희생 제물이 준비되면, 제사 지낼 사람은 그 제물을 가지고 성막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앞에서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전가하며 안수(按手)합니다.

이때 자기 죄를 고백하며 ‘나는 죄로 마땅히 저주받고 죽어야 하지만, 이 양에게 내 죄를 모두 전가하오니 내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안수해야 합니다. 즉 자신을 그 제물처럼 죽을 자로 인정하고 제물인 소나 양에게 안수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제물이 하나님께 열납되어 죄를 속함받습니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우리 죽을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죄를 낱낱이 자백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효력을 누리려면 그분이 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음을 인정하고 죄를 내놓아야 합니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예배
그다음에는 희생 제물을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야 합니다.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레1:11~12).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직접 희생 제물의 목을 칼로 찔러 피를 그릇에 받고, 껍질을 벗기고 내장을 긁어내고 각을 떠야 했습니다. 그럴 때 심정이 어땠을까요? ‘내가 이렇게 칼에 찔려야 하고, 피를 쏟아야 하고, 뼈가 잔인하게 부서지고 온몸이 조각조각 찢어져야 하는데, 나를 대신해 이렇게 양이 죽습니다’ 하면서 양이 죽는 아픔을 똑같이 느끼며 제단 앞에서 벌벌 떨지 않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도 주님 앞에 죄를 회개할 때, “주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와 고난을 당하다가 십자가에 양손과 발이 못 박혀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으신 것은 바로 내 죄 때문입니다. 제가 그렇게 잔인한 고통을 당하고 죽어야 할 죄인인데 주님이 저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며 주님이 당하신 고통과 아픔을 똑같이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을 잡아 살을 찢고 가죽을 벗겨 피를 흘려 제사를 상달해야 저주받거나 죽임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내가 찢고 내가 창으로 찌르고 내가 매질하고 내가 가시관을 씌워 죽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예배드릴 때는 바로 이런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체험을 내 몫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님이 죽으심으로 내가 산다’는 심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가 바로 나요, 예수의 피를 담은 그릇을 들고 있는 자가 바로 나요, 그 피로 속죄함을 받은 자가 바로 나인 것을 고백하며 예배에 임해야 합니다.

“내가 잡은 예수의 그 피가 내 손에 들려 있습니다. 주님, 보시고 속죄하소서! 내가 죽는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는 것이 하나님을 뵙는 예배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1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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