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1-20 13:36:57 ]
하나님 말씀에 완벽히 굴복하여 세상과 분리하여
‘나’라는 존재는 부서지고 이웃과는 하나 되어야
누구든지 소제(素祭)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야 합니다(레2:1~3). 고운 가루로 소제 예물을 드리려면 먼저 곡식을 곱게 빻아야 합니다.
고운 가루로 하나가 되라
소제(素祭) 제물은 고운 가루로 만듭니다. 이는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깨지고 부서져서 “내 피를 받아 마시라, 내 살을 받아먹으라” 하고 말씀하시며 생명의 떡이 되실 것을 예표(豫表)합니다. 십자가에서 그렇게 깨져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 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린 피 공로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는 순간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려면 ‘나’라는 존재가 부서져야 합니다. 통 밀알 같은 내가 다 부서져서 만지면 ‘뽀드득’ 소리를 낼 정도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생각과 이론이 하나님과 자신을 가로막는 원수 같은 견고한 진(陣)이라고 했으며, 이것을 파하고 깨트리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후10:4~6).
딱딱한 통밀 껍질은 세상을 비유합니다. 이 껍질을 벗겨내고 고운가루가 되어야 세상과 완벽히 구별됩니다. ‘고운 가루’라는 말은 세상이 전혀 섞이지 않은, 세상 문화가 전혀 지배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 안에서 완벽하게 내가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소제 예물처럼 자기 존재가 다 죽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이렇게 곱게 빻은 가루로 반죽하면 매우 부드럽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렇게 깨져서 고운 가루가 된 성도는 절대 남에게 상처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제(素祭) 예물을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미 하나 되고, 이웃과도 하나가 된 자입니다.
기름을 섞어 익혀라
이렇게 고운 가루가 준비되면, 기름을 섞어 소제 제물로 만들어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이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레2:4~8).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화덕에 구운 무교병이나, 기름을 발라 화덕에 구운 무교전병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또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번철에 부쳐 드리기도 하고, 기름을 섞어 솥에 삶아 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고운 가루로 반죽해도 기름을 섞거나 발라서 굽든, 부치든, 삶든 셋 중 한 가지 방법으로 익혀야 하나님께 드릴 소제 제물이 완성됩니다.
특히 번철에 부칠 때는 기름을 두르면 반죽이 번철에 눌어 붙지 않는데, 이는 기름 때문에 반죽이 번철에서 살짝 뜬 상태로 익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기름에 비유했습니다(눅4:18~19;행10:38). 성령을 받으면 그 순간부터 아무 데나 붙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절대로 세상과 짝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번철에 기름을 부어 부칠 때에는 잘 뒤집어서 양쪽을 골고루 익혀야 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 안과 밖이 똑같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믿는 자로서 올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안과 밖이 모두 익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제 제물을 준비할 때는 절대로 반죽에 누룩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레2:11). 성경에서 누룩은 악한 것, 더러운 것, 죄스러운 것을 상징합니다. 누룩은 그것이 들어간 물질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성도(聖徒)를 ‘누룩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고전5:7).
또 소제 제물에는 꿀을 넣지 말아야 합니다(레2:11). 성경에서 꿀은 좋은 의미로도 쓰였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많습니다.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린다고 하였고(잠5:3), 꿀을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했습니다(잠25:27).
예수의 맛, 소금의 맛
소제 제물을 만들 때, 이처럼 누룩이나 꿀을 넣지 않는 대신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레2:13). 성경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13). 사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소금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소금은 음식물이 변질해서 부패하지 않게 보호하는 데 사용합니다. 한마디로 음식물이 변치 말라고 넣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분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썩고 부패하여 파산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소금이신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영원히 썩지 않을 생명이 되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내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소제 제물에 소금을 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듯, 우리 속에도 예수의 맛이 나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예수의 맛을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채찍에 맞으실 때 치료의 맛이 나오고, 저주받으실 때 축복의 맛이 나오고, 죽으실 때 생명의 맛이 나온 것처럼, 우리도 언제나 이웃을 향해 이 맛을 내야 합니다. 바로 이 맛이 소금의 맛입니다. 이 맛을 내는 자라야 소제(素祭)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온 인류에 소금이 다 필요하듯이, 온 인류에게는 예수가 필요하니 우리가 그 예수의 맛을 내야 합니다.
민수기 18장 19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擧祭)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선지자의 입에서 나와도, 제사장의 입에서 나와도, 제자와 사도의 입에서 나와도, 오늘날 목사와 성도에게서 나와도 똑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맛을 내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최상급 소제(素祭)를 드려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1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