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0-30 16:25:24 ]
새 목을 비틀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비틀어지듯
눈과 입과 귀로 지은 모든 죄를 토설하라는 의미
번제(燔祭)는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완전히 태워 향기로운 냄새를 올려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번제를 드릴 때는 소나 양을 제물로 드릴 때와는 절차가 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인 새 새끼를 가져다가 목을 비틀고 머리를 끊어 단 위에 불사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몸에서 나는 피는 받아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날개 부분에서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번제단에 놓고 불태우라고 하셨습니다(레1:14~17;5:7~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새 새끼의 머리를 끊기 전에 먼저 비틀라고 하셨을까요? 새 새끼 정도면 머리를 끊지 않고 비틀기만 해도 대부분 죽습니다. 게다가 머리를 비틀면 이목구비도 다 비틀어집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불 태워지는 새 새끼의 머리를 비틀어서 잡으라고 하신 것은 곧 죄인인 우리 인간도 눈과 귀와 입으로 죄짓지 말라는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상 이목구비가 문제입니다. 귀로 들어서 죄짓고, 눈으로 봐서 죄짓고, 입으로 말을 잘못해서 죄짓습니다. 그러니 눈과 귀와 입을 온전히 비틀어야 합니다.
음탕한 눈을 버리라
새 새끼의 머리를 비틀면 가장 먼저 눈이 돌아갑니다. 사람의 지체 중에 눈이 가장 많이 죄를 짓습니다. 성경을 보면, 눈으로 죄지어 망한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사사(士師)며 나실인인 삼손이 바른 눈을 지녔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강력한 힘으로 적군 블레셋을 많이 물리쳤지만, 블레셋 간첩 들릴라를 보고 음탕한 눈을 지녔을 때는 자기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서 온다는 기밀을 누설하여 그 엄청난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군에 사로잡혀 두 눈알이 뽑히고 짐승처럼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돌리는 처참한 신세가 되었고, 블레셋 군과 함께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도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을 품어 간음하였고, 우리아를 전쟁 선봉에 내몰아 고의로 전사하게 하는 비열한 방법을 써서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이 죄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왕권이 박탈되기 직전이었지만, 가슴을 치는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여 겨우 모면했습니다.
이처럼 음탕한 눈은 저주를 가져오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거룩한 뜻을 중단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7)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탐욕의 눈을 제하라
탐욕스러운 눈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십니다.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에게서 문둥병을 고침받자 감사한 뜻으로 선물을 주려고 했을 때 엘리사는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그 선물이 탐나서 나아만을 쫓아가 엘리사를 빙자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받습니다. 엘리사 몰래 선물을 감추고 엘리사 앞에서 거짓말까지 하던 게하시는 그만 현장에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왕하5:20~27).
또 어떤 이는 탐욕스러운 눈으로 말미암아 민족 전체를 위기에 빠지게도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에서는 크게 승리하였으나, 얼마 후 아이 성에서는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젊은이가 피를 쏟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간단하게 이길 전쟁을 오히려 대패하고 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원인을 알려고 하나님께 여쭈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하고 말씀하시며, 범죄자를 색출하는 방법과 처리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죄는 바로 여리고를 점령할 당시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훔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여호수아가 제비 뽑자 범죄자로 아간이 적발되었습니다. 아간은 “시날 산(産)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하고 자백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사자를 보내어 그 숨긴 물건들을 가져오게 하였고, 아간의 가족과 소유물 전부를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이스라엘인이 돌로 쳐 죽이고 불사르고 말았습니다(수7:1~26;22:20).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눈으로 봐서는 모를 때가 잦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건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녀야 합니다. 이에 성경은 흘기는 눈을 경고합니다.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항상 흘기는 눈, 미워하는 눈, 상처 주는 눈이 다 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의 눈을 영의 눈으로 바꿔야 합니다.
또 우리는 멸망하는 영혼을 불쌍하게 바라보는 눈을 지녀야 합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도 옥문이 뒤흔들려 죄수들이 도망가자 그 간수가 자결하려고 할 때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하고 재빨리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간수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까?”라고 물었고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고 말하여 그 가정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물이 되려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에 흠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거룩한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주여, 나의 눈이 흠이 없게 하옵소서!”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1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