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1-08 12:01:35 ]
물리적인 복과 영적인 복의 명확한 구분 필요해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 축복의 시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1~3).
창세기에 나타난 두 가지 복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다 지으시니 그 지으신 일을 마친 날, 즉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창2:3). 창세기 1장에도 하나님께서 복 주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던 중 여섯째 날에 이르러 하나님의 형상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이처럼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하나님께서 복 주신 사건이 각각 기록되어 있는데, 1장에서 사람에게 주신 복은 육신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물리적인 복,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정복하는 복, 다스리는 복’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주신 복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다 만드시고 안식에 들어가신 날, 즉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신 것”으로,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그 날에 들어오는 자에게 주실 복, 그때까지 아무도 모르던, 하나님께서 내놓지 않으신 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창세기 1장에서 주신 복과 2장에서 주신 복은 굉장한 차이가 납니다. 전자는 물질적인 복이요, 후자는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복이 넘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안식(安息)을 누릴 수 있을까요? 거룩하게 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자손이 번성할수록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더더욱 안식할 수 없고 거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안식에 들어오는 자의 복
이렇게 창세기를 잘 살펴보면, 사람이 누리는 모든 물질적인 복도 하나님께서 명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의 영혼이 누리는 영적인 복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는 자에게 명하셨기에 하나님께로서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만약 창세기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인간이 누리는 물질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비롯하였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노라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육적인 복과 영적인 복을 구별하지 못해서 “예수 믿으면 3년 만에 집 산다, 복 받는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이미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만으로도 누구든지 땀 흘려 노력하면 잘 먹고 잘 살게 육적인 복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예수를 안 믿어도 모든 물리적인 복을 받고 살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1장에서 주신 복은 예수 믿는 사람들만 받는 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있는 복, 일곱째 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신 복은 하나님께서 그날 안식하셨듯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는 자만이 받아 누리는 복입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복은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오지 않는 자도 받을 수 있는 복이요, 이 우주 안에 있는 물질 가운데 충만한 복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창1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해 놓고 “너는 그 복으로 말미암아 네 후손이 바닷가 모래처럼, 저 하늘의 별처럼 아주 창대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후손이 그렇게 창대하게 된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육적인 복은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소유하는 복입니다. 예수 믿어서 우리 영혼이 누리는 신령한 복은 보지 못하고 얻으나, 물리적은 복은 직접 보고 소유합니다. 보고 소유하는 복은 어느 순간에는 없어지지만, 보지 못하고 소유하는 신령한 복은 영원히 나와 함께합니다. 창세기 1장은 인간에게 물리적인 복을 주어서 모든 것을 눈에 보이게, 아주 왕성하게 만들어 계속 불어나게 하는 복을 말합니다. 이같이 물리적으로 왕성한 것들이 우리가 볼 때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하고 나와 영원히 함께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중단이 있는 것들입니다. 이 복은 영적인 복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
어떤 사람이 돈, 권력, 명예를 많이 가졌다고 합시다. 그가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더라도 이 사람은 육적인 복을 받았을 뿐입니다. 요한복음 1장 16절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말했습니다. ‘은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썼는데 이 말은 일반적인 은혜, 다시 말하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우리가 이미 받았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말씀하신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공개하셔서 다 소유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미 먹고 입을 복을 다 주었으니 열심히 일하여 그것을 누리라는 말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정복하라, 다스려라” 하고 명하신 복은 벌써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복입니다. 일반 은혜의 복을 받은 그 위에 영적으로 신령한 복이신 예수께서 오시니 “은혜 위에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두 번 썼는데, 전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리적으로 받는 복을 말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복뿐만 아니라 예수를 통해 주시는 복까지 받은 자들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2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