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1-22 11:47:10 ]
하늘에 쌓아 둔 복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어
떡도 중요하지만 더 가치 있는 것에 우선해야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에서 사람들에게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복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는 그것을 내 몫으로 알고 사용하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알아야 누린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할 때는 생육하고 번성할 권리도, 다스리고 정복하고 소유할 권리도 모두 잃어버리고 생존권이 박탈된 상태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실 때부터 그들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 사람에게 은혜를 입어 각종 물건을 소유하고 나온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배경이 되시니 그분께서 명하신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권리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마음을 주셨던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할 권리도, 여리고를 함락할 권리도, 아이 성을 쳐부술 권리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권리가 있기에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요단 강도, 홍해도, 여리고 성도 가로막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소유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신 권리를 자기 몫으로 알고 권리를 누리는 자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빼앗기지 않는 신령한 복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셨어도, 그것을 알지 못해 권리로 누리지 못하면 내 것이 아닙니다. 잠언서는 이런 일에 대해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잠5: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내 손에 왔을 때 가치 있게 써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마6:19~21). 땅에 쌓아 둔 물질의 복은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쌓아 둔 영적인 복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복 주어 거룩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온 자에게 영적인 복을 주셨습니다. 이 영적인 복은 부도가 날 수 없고, 누군가 빼앗아 갈 수도 없고 뺏기지도 않습니다. 영원한 것입니다. 만약 영적인 복이 눈에 보여서 빼앗을 수 있는 것이라면 권력을 가진 자가 다 빼앗아 가고 우리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 속에 있는 천국을 부자가 빼앗아가지 못했듯이, 영적인 복은 보이지 않으니 절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가 얻는 이 영적인 복을 모르고 문화권에 들어 있는 복만 열망합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하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셨는데,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3~4).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은 육신이 있으니 육신을 살게 하는 떡도 먹어야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분명히 떡을 먹어야 육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참하나님과 참사람임을 분명하게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 3~4절 말씀은 사람이 사는 데는 떡도 필요하지만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마귀는 예수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시험했습니다(마4:8~9). 그때 예수께서는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시며 이 땅에 있는 물리적인 복을 얻으려면 자신을 경배하라는 마귀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마4:10). 인간은 영육을 지녔기에 떡도 먹고 하나님의 말씀도 먹어야 하지만, 섬김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고 딱 잘라 말씀 하신 것입니다.
세상 문화는 섬김의 대상이 아니다
이 세상 문화는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말씀대로 정복하고 소유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이지 섬길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내용을 잘 연관해 생각해 보십시오. 천하만국의 문화는 내가 쓰고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소유할 대상이지 섬길 대상이 아닙니다. 섬길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니 하나님만 섬기라고 분명히 못 박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는 물질도 필요하고 신령한 하나님 말씀도 필요합니다.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 인간을 위해 있다는 것이요, 경배한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이 인간을 숭배하고, 물질이 인간을 섬기고, 물질이 우리를 받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질을 쓰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받들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셔서 우리를 다스리고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물질이 섬김의 대상,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물질 밑으로 들어가서 물질을 뒤집어쓰고 받들어 모시고 앉아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께서는 육신의 요구도, 영적인 요구도 다 들어주려 하셨습니다. 육체를 위해서는 물질로 살아야 하고, 영혼을 위해서는 신령한 것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하기에 양쪽의 요구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물질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육체가 떠나면, 그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떠나갈 것을, 유한한 것을 우선하지 말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신령한 영혼의 때를 우선하라는 말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2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