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2-13 10:25:43 ]
성경이 말하는 직분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은 성령 하나님이 공급하는 지혜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이 직분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고, 성령 충만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고전2:10).
성령 충만의 열쇠는 기도
직분자가 성령 충만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직분을 맡았으면서도 기도하려 하지 않습니까? 직분을 맡아놓고도 기도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실로 두렵습니다. 저는 어릴 때 방언은사를 받은 이후로 평생 기도하며 살아왔고 목회할 힘도 기도로 얻어 지금까지 왔습니다.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제 신학교 동기생들은, 학교 다닐 때 기도를 열심히 하던 저와 기도하지 않던 자신들의 현재 목회 현장을 비교하며 기도의 능력이 정말 위대하다고 고백합니다. 한 동기생은 지금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데, 그가 한국에서 개척했을 때 제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동기생 말로는 제가 그 교회에 오자마자 가방을 방에 던져 두더니 강단으로 가서 무릎 꿇고 계속 기도하더랍니다. 몸이 바짝 말라 허수아비같이 생긴 사람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당시 부흥회에 온 동기생 여럿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서 제게도 와서 먹고 기도하라고 말했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몸부림치며 기도만 하더랍니다. 그때는 그런 저를 보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답니다.
“아니, 사람이 먹을 때는 먹고, 쉴 때는 쉬어 가면서 기도도 해야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기도만 한다고 뭐가 돼?”
그리고 강단까지 와서 “윤 전도사님, 이것 좀 잡숫고 하십시오” 하고 어깨를 만져 보니 뼈가 앙상하더랍니다. 그날 앙상한 뼈를 만져본 후로 제가 더 측은하게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까 그때 기도 안 한 자기가 측은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이제 자기도 기도로 목회하겠다고 말합니다. 제가 왜 그렇게 오직 기도하며 몸부림쳤겠습니까? 기도해야만 그날 부흥성회에 하나님께 은혜 받으려고 모여드는 성도 심령에 만족하도록 하나님 말씀을 퍼부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지혜와 힘
다시 말해 직분자는 충성하려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못해 하나님께 풍성한 생명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직분을 남용하거나 내게 준 직분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잘라 불사르듯이 내가 그 직분에서 잘리거나 꺾여 버림받을 때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목회하는 자라면 이 땅에서 처절하게 목회가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이 공급하는 힘이 없는데 어떻게 목회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맡은 자가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것은, 충성은 전부 다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께서 공급하시는 지혜와 힘으로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충성하는 자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원망 불평 않고 오직 감사만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충성하다 싸우고, 충성하다 말대꾸하고 말다툼한다면, 이 사람들은 둘 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일하는 자가 아닙니다. 둘 다 심판과 형벌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직분자는 주님께서 맡겨 주신 사역이 제대로 안 이루어졌을 때 나타나는 후유증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영혼을 맡은 자가 하나님께서 맡긴 대로 성령과 지혜로 영혼을 섬기지 않아서 그 영혼이 시험 들어 떠나고 멸망한다면 그에 관한 책임을 꼭 져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직분자가 된 다음에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직분자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격도 없으면서 직분을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마귀역사를 이겨라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주의 일을 하지 않으면 곧 시험에 듭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하면 항상 피곤하고 싫증 나서 하기 싫습니다. 그래서 마귀역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해서 충성할까 봐 일단 기도부터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원수에게 걸려들면 안 됩니다.
우리 교회는 연중무휴로 매일 저녁 전 교인이 2시간씩 부르짖을 수 있게 기도의 광장을 만들어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부터 철저히 기도하려고 노력합니다. 기도 안 하고도 직분을 수행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인본주의자입니다. 인간이 가진 머리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중직 중에서도 어떤 사람은 교회 일에 총대를 메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도 주를 위해서 앞장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뭔가 자기에게 불리할 성싶으면 그 일에서 쏙 빠집니다. 이런 사람하고 어떻게 생사를 같이하겠습니까? 직분은 주의 일에, 그리고 주의 종과 생사를 같이할 사람이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제자’라는 직분이 있어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할 때는 주님이 잡히시자 고기 잡으러 다시 갈릴리 바다로 가 버렸습니다. “죽을 지언정 주님을 따르겠나이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직분 받을 때는 “아멘!” 하지만 막상 주의 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인본주의로 돌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기도하는 일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을 놓쳐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못하면, 일단 직분자로서 자격 상실입니다. 자격을 잃은 자는 거룩한 직분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그 사람이 직분 맡을 자격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직분자의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직분자세미나’ 중 일부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32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