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안식일과 주일'] 오직 예수로만 거룩해질 수 있다

등록날짜 [ 2013-02-26 09:34:34 ]

참안식은 죄 사함받고 영원한 천국에 거하는 것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은 오직 예수로만 가능해

율법은 인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그저 인간이 부정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율법이 인간이 지은 죄를 찾아내면, 예수께서 그 죄를 사해 주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율법으로 죽게 된 자가 속죄(贖罪)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이 없으면 예수를 만날 수도 없습니다. 율법이 먼저 와서 인류가 지은 죄를 찾아낸 다음에 예수께서 오셔서 그 죄에서 속량해 주십니다. 그러니 율법이 없다면 우리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죄를 짓게 하는 마귀를 십자가에서 정죄하고 멸하셨습니다. 곧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를 모두 사해 주셨으니 이를 믿는 자마다 모두 거룩해집니다. 이때부터 우리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적으로 신령한 교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 사함으로 거룩해지는 복
창세기 2장 1~3절에 “안식일을 복 주어 거룩하게 했다”는 말씀에서 말하는 ‘복’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속량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를 사함받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이렇게 죄를 사함받을 때부터 우리 인간에게도 ‘거룩’이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쉬신 거룩한 안식이 인간에게 적용되기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가 짊어진 죄는 무덤에 묻어 두고 예수 자신만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죄는 무덤 속에 그대로 묻어 두고 예수만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받은 우리와 죄 없으신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게 되었으니 이때부터 인간도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홀로 누리신 안식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우리도 함께 누리는 안식입니다.

또 내 안에 성령이 와 계신다면, 이는 벌써 내게 안식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거룩해졌다는 증거입니다(고전3:16~17). 다시 말해서, 내가 성령 받았다는 것은 내가 안식을 가졌다는 증거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증거요, 내가 거룩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이때부터는 내게도 하나님의 안식 안에 거할 권리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큰 계명
구약 시대 사람들은 여섯째 날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계셨고 그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니, 이 안식은 하나님 홀로 가지셨을 뿐, 여섯째 날에 머물러 있는 인간은 누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에게 안식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자마자 인간에게 안식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함께 계시므로, 이때부터 죄인이 안식하고, 귀신들린 자가 안식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안식을 누렸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거룩해지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율법의 계명을 지켜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계명이 내 안에 들어와야 거룩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진실한 계명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고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서 거룩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이후에도 겉으로는 신앙 양심에서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도덕과 윤리 차원에서 거룩할 뿐이지, 육체의 소욕에서 나오는 죄는 예수 믿기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었다고 갑자기 천사처럼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예수처럼 되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처럼 될 만한 인격이 있고, 예수처럼 될 만한 힘이 있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윤리, 도덕으로는 석가만 못하고 공자만 못하기에 그들에게서 배우려 합니다. 그런데 평범한 인간이 예수를 믿는데 어찌 하루아침에 예수처럼 되겠습니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서 분출되는 육체의 소욕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인간 스스로 어찌할 방법이 없기에 성령의 소욕으로 억압해야 합니다. 그래도 다시 올라오는 육신의 정욕과 죄는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날마다 거룩해져 가는 것입니다.

예수로 거룩해진 것을 믿어야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고백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 자신의 밖에 있는 죄가 대단하고 무서운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자기 몸 안에 있는 육신의 소욕, 육신의 생각 등이 자신을 더 무섭게 죽이려 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윤리.도덕적 차원의 죄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죄가 자기를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면의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를 믿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나의 부정하고 더럽고 거룩하지 못한 죄를 예수께서 짊어지고 죽으셔서 나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거룩해진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닮아가되 우리 스스로 닮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닮아 가게 해 주어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로 말미암아 거룩해질 뿐, 우리 스스로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인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합니다. 거룩해질 수 없는 나를 주님께서 죄를 짊어지고 거룩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로 가야 하고 그 예수를 열망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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