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예수께 나아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등록날짜 [ 2013-03-26 15:51:05 ]

복을 받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주시고자 하시는 분도 마음껏 주실 수 있다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12절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복을 받는지를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이 가르침을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고도 합니다. ‘산상(山上)’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초기에 갈릴리 호수 주위 어느 산에서 하신 설교이기 때문이 붙은 말입니다. 그리고 ‘수훈(垂訓)’이라는 말은 후세에 남기는 가르침이라는 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후세에도 길이 전수되어 후세의 심령에 새겨야 할 주옥같은 생명의 말씀이라는 말입니다.

산상수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처음으로 하신 체계적인 설교이기도 합니다. 그 주제가 ‘복(福)’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이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알게 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공개하신 ‘복’을 공부하며 그 복을 받아 누리는 체험이 우리에게 넘쳐나길 바랍니다.

왜 예수께로 나아가야 하는가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는 말로 산상수훈이 시작됩니다. 바로 앞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고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도 다 고치셨다고 했습니다(마4:23~25). 그러자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쫓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을 보면, 장정만 계산해도 오천 명을 먹였다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까지 합하면 예수를 쫓아다니는 무리는 거의 이만 명이 넘는 수였을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했던 곳에도 거의 이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든 수많은 사람을 보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제자들도 그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수많은 사람이 왜 모였는지를 매우 잘 아셨기에 그 자리에서 복에 관해 선포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모인 무리의 소원이 바로 복 받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시려는 분께 복 받으려는 자들이 나아가니, 복을 주려고 하는 자와 복 받으려는 자가 하나가 되는 순간입니다.

오늘날 교회공동체 모임도 이런 사모함으로 모여들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목사가 선포하는 설교 말씀도 성도에게 복을 말해야 하고, 성도도 신령한 복을 사모하며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께로 나아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목적이 확실하지 않으면, 그저 허다한 무리처럼 교회에 왔다 갔다 할 뿐 예수께서 주시려는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입을 열어 가르치신 예수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당시에 모인 무리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은 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입만 집중해서 보았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각종 회당과 여러 고을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장면을 많이 기록해 놓았지만,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고 정확하고 세밀하게 표현한 곳은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장면밖에는 없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천국 복음을 얼마나 사모하며, 얼마나 애타게 요구하고 기대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듣는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그 입에서 직접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성령께서 감독자로 세운 목사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여 선포하니, 성도도 목사의 다른 외양을 보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입을 집중해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산상수훈하는 장소에 나온 무리는 무엇을 보려고 예수께 나아왔을까요? 예수의 외모를 보려 나아왔을까요? 아니면 예수께서 입고 있는 옷을 보려고 나왔을까요? 아닙니다. 지금 예수를 쫓아온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으려고 나아왔습니다.

예수께 나아가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만날 때 “야, 신부가 입은 드레스가 매우 멋지다!”라고 말했다면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말은 없을 겁니다. 그날 주인공은 신부인데, 신부를 제쳐두고 신부가 입은 의상만 칭찬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교회에 올 때 목적을 잊고 주위 환경과 여건을 봐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건물이 좋고, 교인이 많고, 유명하고 지식 있는 사람이 많아서 오는 곳이 돼서는 안 됩니다. 목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나와야 합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는 말은 그만큼 수많은 이가 예수께 나아간 목적이 확실하고 분명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러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오직 목사의 입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말씀을 선포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요12:49~50).

그러므로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도 자의로 말하지 말고 성경에 나온 그대로, 성령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성도들에게 말해 주어야 성도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있고, 사모함으로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모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올바로 들려 주어서 성도의 영혼이 갈망하는 요청을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3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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