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예수로 부유하길 사모한다

등록날짜 [ 2013-04-30 10:20:21 ]

메마른 영적 처지를 깨달아 회개하는 자만이
속죄로 깨끗해진 심령에 예수를 채울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을 열어 산상수훈(山上垂訓)으로 복을 가르치실 때, 첫째로 일러 주신 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해석하면, “행복할지어다, 심령이 가난한 자여! 천국이 네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한 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아는 자는 천국 부유인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의 심령을 채우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회개하는 자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양식이 없고, 옷이 없고, 사용할 재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그 사람의 영혼이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가난한 것을 깨닫는 사람이 곧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부터 영적으로 가난해졌을까요?

인간의 조상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를 따 먹어 원죄(原罪)를 범하는 순간,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신령한 영적인 부유를 잃어버리고, 영육 간에 부유가 가득했던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의 심령 속에는 죄악과 죽음과 저주만이 가득했고, 인간이 가는 곳에는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습니다(창3:17~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먼저 외친 “회개하라!”는 말씀은 곧 회개하여 천국 부유를 소유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하라는 말은 “네가 왜 심령이 영적으로 가난해졌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부유를 소유하던 네 심령 속에 죄악이 침투하는 순간 그 부유를 다 놓쳐서 죄악과 죽음만이 가득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죄, 너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네 속에 가득한 죄를 토해 놓아라!” 하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심령에 가득 찬 죽음, 죄악, 저주를 쏟아 내놓고 천국으로 채우라는 뜻이 곧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는 말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 하는 말은 결국 같은 뜻입니다.

아담이 신령한 부유의 근원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아담의 후예로서 세상에 태어난 인류 중 심령이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원죄로 인류 전체가 죄로 멸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간을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셔서 인류가 짊어진 모든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구주로 모신 사람은 잃어버린 영적 부유를 되찾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는 심령이 가난한 자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제 나는 예수로 부유하리라!’고 작정해야 합니다.

무엇을 부러워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보면, ‘나도 저렇게 돈이 많은 부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막상 부자가 돼도 만족하지 않습니다. 벌고 또 벌어서 돈을 쌓아 놓으려 합니다. 같은 이치로, 자신의 심령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어떻게든 영적으로 부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떻게든 기도하여 하늘의 부유를 얻어내서 하늘의 것을 독점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사모해야 할 대상은 영적인 부유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전지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유를 사모해야 하나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은 자기 심령에 하나님을 모신 자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해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몫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람들에게 자기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여 자기 몫으로 삼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 부유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늘 기가 죽어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가난이 장애가 되어 주저합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기가 노력하면 언제든지 부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가 노력하고 땀 흘린 만큼 부유를 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로 주는 하나님의 부유는 일방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따라서 예수로 주신 부유를 지닌 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감도 예수 때문이요, 담대함도 예수 때문이니 오직 예수만 자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바울도 때로는 자신의 배경이나 신분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세상에 속한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여기고 자기를 비워 오직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닌 지식이나 배경을 하나님의 부유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겼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야 심령이 부유해질 수 있습니다. 컵에 물이 가득 담겨 있으면 다른 것을 담을 여지가 없지만, 그 컵의 물을 싹 비워 놓으면 다른 것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 앞에서는 내 것이라 여기는 것을 모두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비운 공간에 예수께서 주신 부유를 채울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만큼 가난한 자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을 채워 줄 부유를 지니지 못해 아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유가 없어 아쉬워해야 합니다. 이런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며, 천국을 소유하는 자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3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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