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8)] 돈이 하나님과 나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라

등록날짜 [ 2014-01-28 13:08:48 ]

인정도 없고, 아무 감정도 없는 돈을 사랑하는 잘못된 세대
성령의 감동도 무시해 버리는 신앙생활의 방해꾼을 몰아 내야

예수께서는 부자(富者)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막10:23~26).
 
부자에게는 어떤 속성이 있기에 이다지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일까요?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돈을 이 땅에서 누릴 최고 기업으로 알고 그것에 꼼짝없이 얽매인 자’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돈에 얽매이면 그 자체가 영적생활에 원수가 됩니다. ‘영혼의 때를 아는’ 부자는 이 땅에서 모은 재물을 하늘에 쌓느라고 바쁩니다.

하지만 많은 이가 돈 있을 때는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다가 사업이 망하고 나서야 이를 후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 있을 때 하나님께 헌금이나 할걸” 하고 말입니다. 돈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도 미룹니다. ‘지금 예물 드리면 사업 밑천이 턱없이 부족해... 앞으로 더 많이 벌면 그때 한꺼번에 드리면 되지 뭐.’ 이런 허울 좋은 핑계로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을 잔인하게 짓밟고 맙니다.

신앙생활의 방해꾼
‘말세에는 돈을 사랑하며’라는 말을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얼마나 신앙생활에 방해꾼인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성경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0)라고 했겠습니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사람이나 피조물에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황금만능주의에 빠지면 희로애락이 돈에 좌우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돈에 미쳐 돈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가로막아서는 안 될 하나님 관계
누가복음 16장에도 예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예화를 들어 영혼의 때를 대비치 않은 부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자는 이 땅에 살 때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宴樂)했다고 했습니다(눅16:19). 그 부자는 호화롭게 사는 재미, 잔치를 벌여 즐기는 재미, 한마디로 돈 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목숨이 끝나는 순간,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거기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보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 품에 안긴 나사로가 보였습니다. 나사로가 누구입니까.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찌꺼기를 얻어먹던 거지 아닙니까? 심지어 헌데를 앓아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던 자가 아닙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눅16:24) 부자가 이 땅에 있을 때는 장차 자기 영혼의 때에 거지의 손가락 끝에 찍힌 물 한 방울을 갈구하게 될 줄 꿈엔들 알았겠습니까.

‘돈을 사랑함’은 이렇듯 자기 영혼의 앞길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돈에 가려 영혼의 때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하나님의 일보다 우선시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돈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까지 가로막는 돈
우리도 예배드릴 때는 ‘하나님께 은혜 받았으니 예물 드려 감사하리라’ 감동해놓고 집에 돌아가서는 마음이 변해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형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댑니다. 만약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이 부도날 상황에 내몰렸다고 합시다. 어떻게 해서든 부도를 막아보려고 돈 꾸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사업 부도를 막는 일보다 우선할 일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성령은 말로라도 거역하거나 훼방해서도 안 되는 분입니다. 성령을 거역하거나 훼방한 죄는 오는 세대가 다시 와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마12:31~32).

그런데 성령 받았으면서도 내 안에 모신 성령을 잘못 대우하여 사함받지 못할 죄에 걸리게 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돈을 사랑하다가 성령께서 주신 감동을 거역했습니다. 이 부부도 처음에는 사도의 설교를 듣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사도가 전한 말씀에 은혜를 받자 전답(田畓)을 팔 결심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세계만방에 전하여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값지게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감동대로 자신의 전답을 파는 데까지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땅을 팔아 손에 돈을 쥐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걸 다 갖다 바치면 내일부터 뭘 먹고 살지?’ 걱정 근심이 앞을 가려 땅 판 돈 얼마를 감췄습니다. 돈의 위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나를 피로 값 주고 사서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까지 한순간에 잔인하게 짓밟으니까요. 아나니아는 땅 판 돈 얼마를 감추고 사도에게는 그것이 전부라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결국 사도에게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꾸짖음을 듣고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혼이 떠난 바 되었습니다(행5:3~4). 그의 아내 삽비라 역시 성령을 속이고 거짓말 하다가 남편과 같은 날 사도의 발 아래서 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7~10). 돈을 사랑한 결과입니다.

한 번 성령으로 감동된 것은 내 임의로 할 수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것입니다. 돈 욕심은 이처럼 하나님의 것도 제 맘대로 손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돈을 사랑하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 영혼의 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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