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9)]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등록날짜 [ 2014-02-11 13:23:10 ]

신앙생활 하는 최종 목적은 천국에 가기 위한 것
물질 때문에 좌절하는 어리석은 자 되어선 안 돼

가룟 유다는 스승 예수를 유대 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에 팔아넘겼습니다. 유다에게는 자기 스승이요, 당시 군중에게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로 추앙받던 예수를 팔아넘길 권리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 유대인이 예수를 은 삼십에 사서 죽인 일은 처음부터 불법입니다.

당시에 그 돈은 노예 한 명을 사서 평생 부릴 큰 액수였습니다. 유다는 그 거액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예수를 팔았습니다. 돈은 스승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팔아넘길 만큼 위력이 대단합니다. 예수께서는 죄 없는 자신을 팔고 사는 작태가 불법인 줄 뻔히 아시면서도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 사건도 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예수를 파는 사람들
오늘날도 돈 욕심에 예수를 버리는 이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양심상 불의한 유익을 남기기 어렵습니다. 또 십일조나 절기.건축 헌금 같은 각종 헌금을 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아예 신앙생활을 포기해 버립니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에 은혜를 받으나 오래 유지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계속 믿다가는 집도 못 사겠고, 부자가 되기는 글렀구나!’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를 내버립니다. 천국도 내버립니다. 이 얼마나 눈앞의 것밖에 모르는 행동입니까? 목숨은 예수 믿으려고, 하나님 나라의 부유를 얻으려고 부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신세에 내몰릴지라도 거지 나사로처럼 영혼의 때가 부유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것
또 교회에는 다녀도 돈 욕심에 눈이 어두워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복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민18:28;신12:6;삼상8:15;느10:37,38;말3:10;눅11:42). 그런데 교회에는 열심히 다녀도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이가 있습니다. 말라기 3장에는 십일조와 헌물을 자기 것인 양 움켜쥐고 내지 않는 이를 가리켜 ‘도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8~9).

분명히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니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이는 하나님 몫까지 자기가 갖겠다는 도둑 심보입니다. 하나님 것을 떼어먹는 도둑이 어떻게 자기 것을 하나님께 예물로 바치겠습니까? 도둑이 축복해 달라고 기도한들 과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습니까?

욕심은 하나님 것을 도둑질하게 해
십일조를 안 내는 이는 하나님과 사이에 선(線)을 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거래하지 못할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보통 ‘인색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은 이는 ‘인색’ 수준을 넘어 하나님 것을 도둑질한 행위라고 말라기 선지자가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떼먹은 죄와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도둑질한 죄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운 죄일까요? 이 세상에서는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죄가 더 무겁습니다. 고대 사회부터 도둑 죄는 중요한 사회 범죄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면에서는 십일조를 떼먹는 죄가 더 죄질이 나쁩니다. 하나님 것을 한 푼이라도 떼먹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 것은 도둑질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완전 범죄가 됩니다. 실제로 오늘날 미궁에 빠진 범죄 사건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 속에서는 완전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 떼먹는 죄는 완전 범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분이 그 생각과 마음을 모르시겠습니까? 눈과 귀를 지은 분이 보고 듣는 바를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시종일관 다 보고 계십니다. 그분 앞에서 무엇을 감추겠습니까?

돈이 아무리 크게 여겨져도 성령의 감동을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거짓말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돈을 대단하게 여기면, 하나님 것인 십일조를 떼먹고 교회에서 거룩한 척할 수 있겠습니까? 돈 욕심은 하나님 앞에서 도둑으로 만듭니다. 또 사람 앞에서도 추한 자로 전락시킵니다. 그런데도 그 돈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게 만드는 돈
달란트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주인이 맡긴 몫을 그대로 가져갔다가 심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은행에 넣어서 변리라도 가져올 것이지 본전만 가져왔다”며 야단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몫을 떼어먹은 자가 받을 책망은 얼마나 클까요?  무엇으로 변명하고 변상하겠습니까?

심판의 날은 홀연히 임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돈 때문에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는 추한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돈 탓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돈 때문에 성도끼리 원수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영혼의 때에 아무 쓸모 없는 돈 때문에 신앙생활을 못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돈을 이겨서 신앙생활에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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