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2-18 11:33:03 ]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어리석지만
신앙생활의 한계를 정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르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오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그다음에는 ‘자긍하며’라고 했습니다(딤후3:1~2). ‘자긍(自矜)’이라는 말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짐’이라는 뜻입니다.
요즘은 자기 피알(PR) 시대라 하여 자기를 열심히 드러내고 홍보를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긍이 지나치면 자기 의에 빠집니다. 자긍하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를 드러내기 좋아합니다. 무엇을 할 때마다 ‘내가’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한마디로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느냐? 나를 믿어야지. 나만큼만 해’라는 식의 사고를 지닙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하며 겸손한 척합니다. 말세에는 이렇게 자긍하는 사람이 많다고 사도 바울이 일러줍니다.
자긍하는 자는 무너진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어떤 존재로 인정하느냐에 따라 손해를 보기도 하고 유익을 얻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긍하면, 그만큼 하나님이 도울 이유는 없어집니다. 반대로 ‘나는 주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 주님이 돕습니다. 자긍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산다고 자부하니 하나님의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되고 손해를 많이 봅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은 자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려 할 때만 해도 사울은 겸손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서 가장 미약합니다. 그런데 어찌 제가 왕이 된다고 말씀하십니까?”(삼상9:20~21 참조).
그런데 왕위에 오르고 전쟁에서 승리하자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대제사장이 드려야 할 제사를 자신이 월권하여 대신할 만큼 자긍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장수 골리앗 역시 자신의 힘만 믿고 자긍이 대단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앞에 와서 이스라엘을 모독했습니다.
“이스라엘에 어느 누가 나에게 덤비겠느냐? 나와라! 그가 싸워서 나를 이기면 내가 너희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기어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라!”
그런 골리앗 앞에 이스라엘 군대는 두려워할 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그 광경을 보다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보자 이스라엘이 자신을 모욕하려고 보낸 줄로 여겼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을 업신여겼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골리앗아,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리고는 돌을 취해 물매를 만들어 골리앗에게 힘껏 던졌습니다. 그 돌이 휙 날아가서 골리앗 이마에 박혔습니다. 골리앗은 그 자리에서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자긍하던 골리앗이 다윗의 물맷돌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삼상 17장).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스스로 대단하다 착각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입니다.
자긍하면 주인의 의도를 벗어난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맡긴 돈을 땅을 파고 감추어 놓았습니다. ‘이 돈으로 유익을 남기려다 괜히 손해 보느니 차라리 잘 감추어두었다가 나중에 주인이 왔을 때 도로 내놓으면 그거라도 잘 지켰으니 고맙다고 하지 않겠는가?’ 드디어 주인이 왔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달란트를 그대로 내밀며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자입니다. 그러니 나 같은 것이 한 달란트 가지고 장사해서 유익을 남겨봤자 한 달란트를 더 남긴다 해도 그것 가지고 뭐가 되겠습니까? 당신이 거두는 것이 훨씬 많지 않겠습니까?”
주인을 높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주인을 불법자로 만들고, 주인의 의도를 알지 못하였으니 주인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스스로 자긍하는 지식이 이렇습니다. 결국 한 달란트를 받고 자긍하던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말라
‘이 정도면 주님이 기뻐하겠지’라고 신앙생활을 자기가 정하고 그대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행동입니다. 신앙생활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행동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 낮 예배만, 어떤 사람은 주일 낮 예배와 저녁예배만 드리겠다고 선을 정한 후, 그 이상은 절대 예배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한계가 전혀 없는 주님의 능력 앞에 겸손히 순종하지 않고 자기가 선을 그어놓고 그만큼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제한 없이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긍하지 말고 날마다 ‘받은 은혜에 비하면 나는 부족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주를 위해 충성할 날이 계속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육체의 날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단 한 가지도 자긍할 것이 없으니 주님만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