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말씀이 흘러 떠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등록날짜 [ 2013-04-09 09:12:15 ]

하나님 말씀대로만 따라가면 시험에 들 일 없어
성경 66권 전체를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야

<사진설명> 산상수훈 장면.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마5:1~2).

예수께서 지금 산에 올라와 앉으신 목적은 예수를 찾아온 자들에게 무엇인가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까지 주님을 향해 경청할 자세로 앉았을 때, 드디어 예수께서 입을 열어 복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훗날 제자들이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수많은 사람과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앉은 이유가 바로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으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내 것으로 소유하라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목적을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그렇게 움직이려고 하는 데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자기를 찾아온 무리를 향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라고 복을 비는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은 자들이 심령을 비워 복 받을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국을 주고자 하시는 주님의 진실한 소망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하려면, 그 소망이 바로 내 영혼이 갈망하고 사모하는 요청이 되게 하려면, 확실하게 심령을 비워서 그 천국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입을 열어 가르친 자와 듣는 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고 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성도에게 목사를 주시해서 보라고 강조하는 까닭은 성도가 사모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각자 심령 안에 아낌없이 쌓아 두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입을 열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를 끝까지 주시해서 그 말씀을 다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마태가 만약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중에 한눈을 팔았다면, 아마 우리가 사모하고 바라는 복의 말씀 분량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배 시간에 참석하고도 그날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영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오늘날 믿노라 하는 수많은 사람이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하고는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믿음으로 착각합니다.

꼭 필요한 생명의 양식
주님의 입만 바라보며 그 말씀을 경청했다는 것은 그 말씀에 생명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목사가 설교할 때 조는 사람을 깨우는 이유도 생명의 말씀을 들으라는 뜻입니다. 입을 열어 선포하는 말씀을 듣지 못하면 교회에 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를 보려고 산에 올라왔다 할지라도 예수가 입을 열어 가르치는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복, 곧 천국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축복을 누리려면 말씀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복 받을지를 알려면 입을 열어 가르치시는 주님을 주시하고, 그 한 말씀 한 말씀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히2:1)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물화를 그렸는데 눈동자를 빼놓고 그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것은 아무리 잘 그려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리지 않으면 그림의 가치가 없어지듯 성경 말씀도 어느 것 하나를 빼놓고 들으면 그것 때문에 흠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 말씀은 내 영혼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일에 완전하고, 이 땅에서 영적생활을 하는 일에 완전한 것이 말씀입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씀, 성령의 감동으로 나온 말씀이니 한 말씀도 무시하지 말고 모두 다 내 심령에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입을 보는 믿음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또 어느 동네, 어떤 집에서 살고, 어떤 차를 타고 다니는지를 보려 합니다. 육신의 때에 만족을 주는 것들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와서 보려고 한 것은 예수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떠한 행동을 하는지가 아니라 그 입에서 어떠한 축복이 나오는지 알기를 사모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이 전해지는 목사의 입을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본다면 교회에 온 목적이 잘못되었습니다. 교회에 말씀을 들으러 오는 자는 다른 것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오직 말씀 듣는 일에만 열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시험 드는 사람은 예수의 입에서 선포된 말씀을 들으려고 온 자가 아닙니다. 그 사람은 흔들리는 갈대, 혹은 고운 옷을 입은 자를 보려고 온 사람입니다. 즉 자기 마음과 기분이나 감정에 도취해 온 사람입니다.
 
어리석게 이런 것 때문에 시험 드는 자가 되지 말고,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의 말씀이 내게 복이 되게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입을 보는 생활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성전에 와서 설교를 들어도 언제나 주님의 입술을 보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만 되면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게 해도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교회에 온 목적이 오직 말씀을 들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주님의 입을 주시하는 믿음을 지녀야 합니다. 주님의 입만 주시하면 시험 들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판하거나 헤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3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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