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애통하는 회개로 속죄함의 위로를 받으라

등록날짜 [ 2013-06-12 10:07:27 ]

지옥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예수의 피로 우리 죄를 사(赦)하신 그 은혜 잊지 말아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0:28)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애통하는 자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 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전부 다 내주어 위로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들에게 자기 아들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위로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들의 목숨으로 위로받기 원하거든 자기 죄를 보고 애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아들을 죽여서 주시는 위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여 인간을 속죄해 주시겠다고 말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사람들이 보는 데서 실제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하시고, 아들이 흘린 피로 우리 죄를 사해 주시기까지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죄를 사해 준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속죄한다는 증거로 내 아들을 보내 주마! 그는 내가 너희를 위로한다는 증거가 되나니, 너희가 그를 죽여라!”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아들을 죽였을지라도 나는 아들의 원수를 갚지 않겠다. 대신 너희 죄 때문에 애통하기만 해라. 그러면 내 아들의 죽음으로 네 죄를 사해 주겠다”라고 하시며 그분이 베푼 사랑과 위로를 확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주님께 내어놓고 애통하기만 하면 주님께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가 실컷 울며 회개하고 나면 마음이 가뿐하고 기뻐서 천지가 다 내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애통하는 자에게 위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
하나님께서는 겉만 번드르르한 위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애통하는 자에게 아들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며 회개라는 천국 열쇠를 건네 주셨습니다. 영생으로 확실한 위로를 주셨습니다. 이 위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이나 선물로 인심 쓰거나 등을 두들겨 주는 위로와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위로입니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이런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그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애통한 그것 하나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모두 애통하여 예수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주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크신 하나님 대신 한낱 피조물인 사람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랄 때가 잦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목사가 자기에게 관심이 조금만 없다 싶으면 “우리 목사님이 나를 버렸어. 그러니 교회 안 가”라고 생떼를 부립니다.

지금까지 성도가 교회에 안 나와서 목사가 속 썩는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교회에 나와서 속 썩는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목사가 베푸는 인정과 동정으로는 아무리 위로받아도 죄를 사함받을 수 없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위로를 받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강단에서 하나님 아들이 흘리신 피의 말씀을 선포하거든 그것이 가장 큰 위로인 줄 믿고 만족해야 합니다. 목사 입에서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이 가장 큰 위로인 줄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은 위로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
어느 죄수가 재판에서 형량을 얼마나 내릴까 긴장하며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죗값으로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우리가 하나님 아들이 흘린 피로 속죄받아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는 영생을 얻었다면, 그 기쁨이 어느 정도이겠습니까?

육체는 어느 땐가 죽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영원히 삽니다. 그러니 우리 죄를 속하려고 하나님 아들이 대신 죽어 주신 위로도 영원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큰 위로를 받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옥에 갇혔다가 무죄를 선고받아 석방될 때 “저는 갈 데가 없어요. 죽는 것이 편해요. 빨리 죽여 주세요”라고 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오갈 데 없어도 감옥에서는 하루빨리 나가고 싶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사형을 선고받아 죽을 뻔한 자가 무죄를 선고받으면 기운이 펄펄 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안다면, 그 기쁨으로 독수리가 힘차게 날아오르듯 날마다 새 힘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라는 주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속죄라는 위로의 길을 열어 놓으신 주님 심정과 주님 뜻을 이해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위로가 생애 속에 항상 넘칠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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