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6-26 09:57:23 ]
높아지려는 마음을 다스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사람을 얻고 결국 이 땅에서도 화평을 누리게 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에 이어 ‘온유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온유’는 시편 37편 11절에도 나옵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또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온유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9~30).
온유는 의도적으로 양보하는 것
‘온유’는 단순히 외형상 폭력을 휘두르거나 잔인하다는 말의 반대어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힘이 없어서 물러서는 무능력도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양보해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는 ‘온유’가 아닙니다.
‘온유’는 의도적으로 양보한다는 뜻입니다. 실제 우리 삶 속에서 발견하는 ‘온유’는 인격, 사회적인 지위, 신앙 등 어느 면으로 봐도 충분히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일부러 다른 사람을 세워 주려고 양보하는 행위나 마음가짐을 뜻합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온유한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어떤 일이 몹시 잘못되어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누가 이 일을 했습니까?” 물어보니 어느 성도가 나서서 “제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으니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잘못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럴 때 처음에 자기가 잘못했노라고 말한 그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혹은 교회에서 남몰래 잘한 일을 두고 “누가 이렇게 잘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이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잘못한 일은 자기가 했다고 뒤집어쓰고, 잘한 일은 남이 했다고 공로를 돌리는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바로 ‘온유’입니다.
또 지금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시다. 그 일을 하면 여러 가지 유익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둘이나 있습니다. 그 일을 자기가 하려고 마음먹으면 능히 할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행위나 마음가짐이 ‘온유’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온유한’ 사람은 늘 사람을 좋게 합니다. 이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을 좋게 하고, 저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을 좋게 합니다. 사리 분별없이 무작정 좋게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두루 살펴서 상대를 좋게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불화가 일어나지만, 낮아지는 온유한 사람이 많으면 평안합니다.
온유한 자에게 따르는 복
‘온유’와 ‘겸손’은 차이가 있습니다. ‘겸손’은 상대방을 자신보다 높이 보고 섬기고 받드는 행위나 마음가짐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움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얻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온유하여 사람을 좋게 하면, 사람을 얻습니다. 결국 온유한 사람이 이 땅에서 성공합니다. 이 사람도 얻고, 저 사람도 얻는 온유한 사람에게 돈, 명예, 지위는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하는 말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사람을 얻는 지혜가 ‘온유’입니다.
사람을 얻는다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 줄 아십니까? 내게 돈, 명예, 권세가 없어도 사람만 얻으면 그 사람의 소유를 내가 필요할 때 쓸 수 있습니다.
열 명을 얻으면 열 명의 소유를 내가 꼭 필요할 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열 명을 얻으면 열 명이 가진 부유를, 백 명을 얻으면 백 명이 가진 부유를 기업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전도도 잘합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믿어지지 때문입니다. 그 사람 말에 권위가 있어서 예수 믿으라고 할 때 예수를 믿고 주께로 돌아옵니다.
교회에서 영혼을 섬기는 직분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 똑똑한 체하는 직분자는 사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맡겨 준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영적 권위를 지니고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반기를 들다가도 온유한 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 말에 순종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미 얻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온유함으로 사랑하라
목회자가 성도를 얻으려면 절대로 성도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 험담은 곧 목사의 흠입니다. 성도에게 험담할 일이 있으면, 오히려 목사 자신이 잘못 가르쳐서 그런 일을 초래했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성도 앞에서 목사 자신의 흠을 드러낼지언정, 다른 성도의 흠을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또 성도끼리 헐뜯고 중상 모략할 때에도 목사가 그 말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성도의 흠을 일러준 그 성도가 듣기에 거북할지라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점이 좋고 훌륭합니다.
이런 점은 우리 서로 그분에게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성도를 온유와 사랑으로 품으면, 일단 그 성도는 더는 말할 데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헐뜯던 그 성도에게 목사가 칭찬하더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그 성도는 목사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러면 누구도 시험 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목사는 누구에게든 성도의 좋은 점만 말해야 합니다.
성도의 흠을 다른 성도에게 말하면 그 성도를 잃기로 결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는 온유하지 못하면 할 수 없습니다. 온유해서 성도를 얻는 일이 목회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