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성도의 옳은 행실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

등록날짜 [ 2013-07-22 15:31:46 ]

배고픈 자가 마지막 최후의 양식을 찾듯
하나님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라고 예수께서는 축복하셨습니다(마5:6). 이 말씀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영적으로 부유한 자여, 의에 주리고 목마르라” 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네가 영적으로 부유하기를 원한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라. 그리하면 네게 배부른 복이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이 배부름의 부유는 세상 문화적 수준을 초월한, 거룩한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은 영원한 부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믿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배부르리라’는 말은 그만큼 의를 절실히 사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의에 주린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야 합니다. 의에 주린다는 의미를 모르면 그만큼 의를 사모하지 못합니다. 내가 굶주린 상태를 알아야 먹을 양식을 사모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울다가도 젖을 실컷 먹으면 잘 놉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만족을 누리면, 세상에 걱정 근심거리 없이 날마다 기쁨만 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심각한 영적 기근을 뜻하기도 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 하고 이 갈급함을 고백하였습니다.

또 아모스 선지자는 앞으로 일어날 영적 기갈을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암8:11~14).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갈망을 가리키며, 말씀대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의, 즉 그 나라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사모함을 말합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

‘하나님의 의’를 실제 신앙생활에 맞추어 생각해 본다면 ‘성도의 옳은 행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도의 옳은 행실을 세마포에 비유했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8).
의로운 행실과 옳은 행실은 같은 뜻입니다. 의에 주린 자가 주님 앞에 옳은 행실로 한 올 한 올 짜면 그것이 곧 세마포며, 세마포가 없이는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라”는 말은 “신부 되기를 열망하는 자여! 의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어떤 신부가 시집을 가려고 세마포로 드레스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만약 실이 모자라서 결혼식 날까지 드레스를 완성하지 못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똑같이 주님 오실 날이 임박했는데 우리가 의로운 행실로 세마포를 짜지 못해 주님의 신부로 들림받지 못한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의에 주려서 기어이 세마포 마지막 한 올까지 다 완성해야 하듯이 이렇게 의에 주려서 의로 배가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목마른 자가 돼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성도의 옳은 행실에 ‘충성’이 있습니다. 주를 위해 충성하기를 사모하는 자가 곧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는 말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셨으니 영적인 부유가 있는 하늘의 보상을 사모함으로 주리고 배고프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 목마름과 주림을 세상의 문화적 차원에서 나오는 풍요로 채우려 하지 말고 하늘에서 주는 사명으로 채워 배부르라는 말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온통 먹을거리에만 신경 씁니다. 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목마른 자가 물을 찾아 헤맬 때 고통스러운 그 목마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목마름이 최절정에 달하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지옥’입니다. 부자가 음부에서 물을 찾으려고 “거지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서 내 혀를 서늘케 하소서” 하고 울부짖을 만큼 갈증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 정도로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목마르고 주린 자가 돼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사모함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찾고 그 일을 하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주님의 일에 충성한다면 얼마나 잘하겠습니까? 우리는 목마른 자가 물 한 모금을 간절히 사모하듯, 배고픈 자가 마지막 최후의 양식을 찾듯 하나님의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수 있게 의를 이루셨습니다.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다 내어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할 수밖에 없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이 갚을 수 없는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길이 곧 은혜에 감사함으로 충성하는 일이요, 이 한량 없는 사랑에 보답할 방법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직분을 사명으로 알고 죽도록 충성하는 일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분을 감당하고자 죽도록 충성하면 그것이 의에 주린 자가 배부름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에 충성하는 것이 곧 넉넉한 양식을 채울 수 있는 기회요, 축복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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