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 지상강의 ‘산상수훈’] 주님 일을 사모하여 영적 주림과 갈증을 채우라

등록날짜 [ 2013-08-13 09:18:38 ]

세상 염려와 걱정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영생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어야

우리는 무엇이 의(義)인지 불의(不義)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잘못된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주여! 다른 사람은 예수 믿고 복 받아 집도 사고, 땅도 사고, 남편이 출세하고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갔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이렇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그런 복을 받지 못합니까? 제게도 그런 복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는 기독교를 오해한 데서 나온 것입니다.

이 땅에서 집을 사고 땅을 샀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복일까요?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집이나 땅을 많이 사고, 남편과 자식이 잘 돼도 이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 격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그 재물이 다하는 날이 있고, 다하지 않더라도 내 인생이 다하는 날 그것들을 가지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 대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주를 위해 쓴다면, 이는 영혼의 때에 영원히 누릴 내 몫으로 남습니다. 그러니 진정 복 받은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께 내드리는 사람입니다.

의를 위하는 자의 핍박과 복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고, 하나님의 의를 주리고 목마르듯 사모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책임지고 채워 주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마 5:10)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는 그 의를 이루고자 할 때 핍박이 옵니다. 형제나 자매, 어미나 아비, 혹은 자식에게서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또 내가 지닌 물질을 다 주를 위해 써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를 얻는 일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내가 알고 내놓을 때 핍박이 온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핍박과 더불어 이 땅에서 백배를 더해 주시는 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까지 얻는다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자기 모든 소유를 내어놓는 자는 다 잃은 듯하지만 더 많이 얻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해 줍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복음을 목마르듯, 배가 고파 먹으려 하듯 사모하며 전하는 자들을 세상이 알아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알아 주십니다.

영적인 부유를 추구하는 자
우리가 이처럼 영적으로 부유한 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즐거워하고 사모하며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갈증이 해소되고 배고픔도 사라집니다. 비록 지금은 육신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일지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내 안에 있을 때 평안과 기쁨이 있고, 그분이 내 안에 있을 때 만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동경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죄와 불의를 사모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얻는 일에 자기 인생을 다 걸고 어떻든 악착같이 벌려고 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과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는 악착같이 주님께 더 드리려고 하고, 악착같이 주를 위해 충성하려고 하고, 악착같이 하늘에 쌓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 와 예배를 드리면서도 세상 걱정으로 가득할 때가 잦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앞당겨서 염려에 주린 자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근심과 염려에 주린 인간이 돼서는 안 됩니다. 염려와 근심에 주린 자는 늘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하고 말했습니다(벧전5:7). 그다음에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벧전5:8). 염려를 사모하는 자에게 마귀가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염려를 사모하지 말고, 근심을 사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고, 주의 일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 순종하는 자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을 구원하려고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할 시점에서 절대로 사양하지 않으셨습니다. 매 맞는 일도 사양하지 않고 맞으셨기에 우리가 나음을 입고, 십자가에 달리는 저주도 사양하지 않고 받으셨기에 우리가 저주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누립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처참한 고통도 사양하지 않으셨기에, 우리의 죄를 갚으시고 우리가 지옥 형벌이라는 멸망에서 벗어나 천국을 얻습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다 순종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일에 이처럼 갈증을 느끼셨기에 밤잠도 안 주무시고 기도하셨고, 낮에도 계속 그 의의 갈증을 채우려고 전도하러 다니셨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기까지 그 의를 사모하다가 그 의를 이루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절대 사양하지 않고 순종했듯, 우리도 예수의 일을 사양하지 않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정말 목마르고 주린 갈증을 예수로 채우려고 배고픈 자가 밥을 사양하지 않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사양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육신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고, 밥이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확실한 영적인 사람, 즉 영적인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낄 영감 있는 사람이 되어 예수로 먹고 사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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