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1-07 09:56:14 ]
자기만 사랑하지 말고 주위 사람에게도 사랑 베풀며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 이루며 살아야 할 때
오래전 일입니다. 추운 겨울에 교인들과 함께 집회에 다녀오다가 대관령 고개를 넘을 때였습니다. 도로 한쪽에 웬 여인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교통사고를 당한 듯 피투성이인 채로 누워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애절한 눈빛으로 무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차보다 앞에 가던 차들은 한결같이 그 여인 곁을 스쳐 지나갈 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두 대가 아니고 수십 대가 그렇게 핸들을 멈추지 않고 냉정히 지나치는 모습에 내심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급히 차를 도로 한쪽에 세운 후 그 여인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리를 차에 심하게 치인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성도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 그 여인을 차 안으로 옮기고 가장 가까운 병원 위치를 알아내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날 우리 차가 그 길로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여인은 다리를 다친 채 대관령 고개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왜 이처럼 비정해졌을까요? 사람이 죽어가도 왜 동정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냉혹해졌을까요?
정말 말세에는 사람들은 자기만 사랑할 뿐, 타인의 불행에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보이지 않는 냉혹한(冷酷漢)이 되었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는 이기주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자기만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인류를 사랑하셔서 죗값을 갚아 주시려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놓고 십자가에 잔인하게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인들도 이웃 영혼을 사랑하는 일에 자기 목숨까지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은 예수 믿노라 하는 기독교인조차 자기만 사랑하려 들까요? 예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사랑받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먼저 남을 사랑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받으려고 태어난 존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려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만 사랑한다면, 이는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과는 정반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만 사랑하셨다면,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기까지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뜻은 애당초 세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자기만 사랑하셨다면, 하늘 보좌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와서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라는 천한 신분으로 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또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최후에 매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 박혀 죽어 인류 구원을 실천하는 일 같은 것은 아예 실행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 인류를 사랑하셨기에 그처럼 뜨겁게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자기 독생자를, 또 자기 생애를 잔인하리만치 철저히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인간을 사랑할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동등한 존재인 우리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자신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았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태양빛이 달에서 부딪혀 반사하니까 한밤중에도 달이 훤히 빛을 발하는 듯 보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보는 달빛은 태양빛인 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받은 자라면 나를 통해서 이웃에게 제한 없이 그 사랑을 반사하여 죄악으로 인한 사망의 어두움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 사랑을 이웃에게 베풀지 않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받은 사람은 그렇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를 받지 않았기에 이웃에게도 사랑의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아야 그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주는 자가 받을 축복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 일을 책임지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또 내가 먼저 남에게 주려 하고, 내가 먼저 희생하려는 사고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에 가든 돋보입니다. 그렇게 사랑을 먼저 베풀면 무슨 일을 당했을 때, 많은 이가 내 편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도 그분이 기뻐하실 만큼 먼저 드리면, 내가 무슨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즉각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4~15)라고 성경에 말씀한 그 일이 바로 내게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시기 전에 먼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받는 것을 영광으로 착각합니다. 우리는 영육 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 사랑의 극치인 복음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소원하십니다. 이런 사랑의 극치가 바로 복음전도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자기만 사랑하니, 전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한 사람 신앙생활 유지하기에 바쁘니, 다른 사람을 전도하려는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 교인 수가 계속 줄어드는 것도 자기만 사랑하는 풍조 까닭입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사랑이 없으니 기존 신자가 떨어져 나갑니다. 또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니 전도되어 새로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여 선진국인 된 나라들을 보면 국가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따스한 사랑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모두 자기만 사랑한 결과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끝까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길은 성경대로 사는 방법뿐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