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3-11 09:29:36 ]
하나님보다 자신의 수단과 방법을 더 신뢰하는 게 죄
교회는 주님의 뜻대로만 성령의 감동대로만 움직여야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3:1~2).
‘교만’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때에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한마디로 잘난 척하고 뽐내는 건방진 태도를 말합니다. 또 성경 원어의 의미로는, 자기 자신 또는 자신이 택한 수단이나 방법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큰 죄입니다. 교만한 심정을 토양 삼아 죄가 싹을 틔웁니다. 마귀의 대표적인 성질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씀은 이런 사실을 여실히 뒷받침해 줍니다.
선악과 사건은 교만의 시작
영적 의미에서 ‘교만’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에덴동산에서 벌어진 선악과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교만’은 단순히 불순종하는 감정일 뿐 아니라 그 시발점이 하나님이 유일신이심을 부정한 데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 세상 만물을 인간에게 주시며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절대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확실히 경고하셨습니다(창2:16~17). 그런데 교만한 자 마귀는 인간도 자기처럼 하나님을 도전하다 멸망하게 하려고 뱀을 이용하여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유혹의 미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귀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며 과장해서 말해 하와를 대화에 끌어들였습니다. 그다음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4~5).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못 먹게 하신 이유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거짓말로 마귀는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하와는 그 말에 혹해서 “선악과가 이렇게 좋으니까 그동안 하나님이 독차지하셨구나”라면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타락하여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교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마귀의 말대로라면 하나님은 몇 명이든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고, 이어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했습니다. 마귀의 말대로라면 순식간에 하나님이 셋인 셈입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신6:4)라는 유일신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유일하신 하나님”(요5:44,17:3),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딤전1:17)이라고 하였고,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8:4~6).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교만은 십계명 중 첫째 계명(출20:1)을 범하는 큰 죄입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나님
‘교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할 때, 피조물이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생각 자체는 멸망을 피치 못할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친다고 하셨습니다(약4:6). 이 말씀은 곧 ‘누구도 하나님과 같은 신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면 살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세에 사람들이 교만해진다는 말은 각자 자기가 제일이라고 주장하고, 각자 하나님처럼 되려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머리’가 되고자 하는 근성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격도 없으면서 권사, 장로, 집사 직분을 맡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 직분을 안 주면 시험에 듭니다. 직분을 못 받으면 ‘자격도 없으면서 내가 교만했구나. 이제부터라도 자격을 갖춰야지’ 하며 겸손하면 유익이 있을 터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시험 들어 무너져 결국 하나님께 물리침을 받는 모습을 볼 때 몹시 안타깝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 물리치신 결과입니다.
교만은 인본주의적 생각
선악과 사건을 통해서 보듯, 하와와 아담의 교만이 유일신 하나님을 부정한 인류의 원죄 사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특히 목사는 교만하면 안 됩니다. 연희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만약 목사인 제가 사람 눈치 보며 목회했다면, 우리 교회가 오늘날처럼 부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하나님이 유일신이신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했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완벽히 드러났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진행되는 일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인본주의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고 했는데, 몸 된 교회가 주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뜻대로 움직이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령이 거하시는 주님의 거룩한 전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대로 움직이지 않고 나도 당신과 똑같은 신이니 내 마음대로 움직이겠다며 교만을 떨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교만을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7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