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22 11:59:09 ]
부모가 자식을 다스릴 수 없는 시대가 오면 말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죄 짓게 되는 것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에서 밝힌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징조’ 중의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가 오면 그때가 말세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 간에 사랑을 나누는 데에 있고, 그 사랑은 가족 간에 마음이 통하는 데 있습니다. 가족 간에 소통이 되면 사랑의 질서 안에서 자식은 부모에게 저절로 순종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막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마치 하나님 말씀이 간섭하고 시비하는 것처럼 느껴져 ‘꼭 그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을 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면 하나님 사랑에 감격합니다. ‘아,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내 죄와 허물을 사해 주시기까지 나를 이처럼 극진히 사랑하셨구나, 내가 죄로 영육 간에 망하지 않기를 이토록 애절하게 바라셨구나.’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일이 매사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뿌리에서 진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나무는 곧 말라 죽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으로 생명의 진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영적으로 고갈돼 영육 간에 사망에 이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심정이 통하지 않아 불순종하면 이 가정은 죽은 고목과 다름이 없습니다.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종아리 맞는 소리가 동네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아버지, 다시는 안 할게요.’ ‘형, 다시는 안 할게.’
매 맞는 소리와 싹싹 비는 소리가 심심찮게 이웃집 담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낮에 나랑 같이 놀던 친구가 무얼 잘못 했는지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는 소리가 귀 따갑게 들려오면, 혹시 그 불똥이 내게도 튀지 않을까 벌벌 떨며 아버지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던 어릴 적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라도 자기 자녀의 종아리를 때리며 훈계하기가 어렵습니다. 우선 자식들이 매를 대는 부모 앞에 꼼짝없이 맞아줄 만큼 부모의 권위가 서지 않는 세태 탓도 있고, 체벌을 자칫 잘못 했다가는 부모 자식 간이라도 법적인 문제로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부모의 빗나간 자식 사랑이나, 자식의 패륜으로 부모 자식 간에 살인극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비극은 부모 자식 간에 심정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부모가 자식을 바로 가르칠 수 없는 시대를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에베소서 6장 1절에는 말세를 당한 시대에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대로 사는 길인지 정확히 명시해놓았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이와 같이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단호히 말해놓았습니다. 순종하는 자식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영적인 부자(父子)관계인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니 하나님과 우리는 예수 안에서 신령한 가족의 일원입니다. 그러니 자녀로서 훈육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불순종이 만드는 세대 차이
하나님은 자기 자녀인 우리가 잘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잘될 때 기뻐하시고 상을 주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말세에는 많은 이가 세상 풍속을 좇으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고 불순종합니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에서 역사하는 영, 즉 불순종하게 하는 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마귀입니다. 마귀는 모든 일에 견해 차이를 만들어 불순종하게 합니다.
오늘날 자식들이 부모에게 불순종할 때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세대 차이’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문제는 자식들이 부모는 ‘구식’이고 자기들이 ‘신식’이어서 세대 차이가 난다고 오해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는 인생 여정 동안, 수많은 일을 몸소 겪어서 아는 것이 많으니 되레 ‘신식’입니다. 자녀는 경험한 것이 별로 없기에 부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지식의 폭과 깊이가 얕아 되레 ‘구식’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전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거쳐온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자신 있게 신식으로 조언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관련 배경 지식이 풍부하니까요. 하지만 자녀는 배경지식이 없어 사태를 헤쳐나가기 어려우니 구식인 셈입니다.
목사가 성도에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어떻게 하라고 명하신 내용을 ‘알고 있기에’ ‘모르는’ 성도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식은 자기보다 ‘잘 아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고,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 아는’ 주의 종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모든 세대를 극복하고 하나님과 심정이 통하게 됩니다.
순종은 편안한 것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이 말씀은 곧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면 왜 잘 되고 장수할까요? 첫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까요. 둘째, 부모가 한 말씀에 순종하면 부모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내 몫으로 소유하게 되어 큰 재산이 됩니다. 셋째, 부모를 거스르지 않으니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니 세 가지 이유로 잘되고 장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자녀들의 생각이 아무리 옳아도 부모의 생각에 못 미친다는 창조자의 권면입니다. 말세에 부모를 거역하여 부모가 주시는 올바른 지식과 하나님 말씀을 저버려 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순종하여 흥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