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27)] 영혼을 사랑하지 않는 때가 온다

등록날짜 [ 2014-06-24 11:31:16 ]

무자비하고 이기적인 성향이 갈수록 짙어질 것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 없어져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딤후3:1~3).

디모데후서 3장 강해에서 우리는 “거룩하지 아니하며”에 관한 말씀을 4회에 걸쳐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나타나는 징조 중 아홉째인 “무정하며”라는 말씀에 관해 공부하고자 합니다.

정을 베풀지 않는 세상
‘무정(無情)하다’는 ‘정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 속에서 쏟아 낼만한 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말세에는 정이 없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누구에겐가 줄 수 있는 것이 정입니다. 정이 없는 사람은 정을 못 줍니다. 쌀쌀 맞은 사람, 잔인한 사람, 무자비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찬바람이 휙휙 날 정도로 무정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자기 이권이 걸린 문제가 생기거나 유익이 있을 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충족했을 때는 자기만 살려고 하지 남에게는 정을 베풀지 않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요즘은 나병환자, 한센병자라고 하는 문둥병 걸린 사람이 저희 집에 자주 왔습니다. 치료할 수 없는 전염병이었기에 사람들은 문둥이가 온다며 대문을 급히 걸어 잠궜습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대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약이 좋아서 진물이 안 떨어지지만 그 때는 엿물 떨어지듯이 손과 발, 얼굴에서 진물을 뚝뚝 떨어지는 문둥병자가 들어옵니다. 얼마나 더러웠겠습니까? 그런데도 어머니께서는 마루를 가리키며 “얼마나 춥고 배고파. 이리 올라와 앉아”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극구 사양합니다. “아주머니, 내가 거기앉으면 아이들이 싫어하니 제게 밥 한술 주세요. 가지고 가서 저 길가에서 먹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녀. 다 똑같은 사람인데. 당신은 병들었고 우리는 병들지 않은 것뿐이지”라고 말씀하면 그 문둥병자는 진물이 마룻바닥에 안 묻게 하려고 조심스럽게 앉습니다. 어머니께서 김칫국을 맛있게 끊여서 밥을 한 상 차려 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먹고는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복 받고 잘 사세요” 하며 갔습니다.

어린 저는 그 모습을 보고 더러워서 어머니께 다그쳐 물었습니다. “엄마, 왜 우리 집은 문둥병자만 오면 꼭 들어오라고 하고 마루에 앉혀, 저 수저로 누가 밥을 먹겠어?” 그러면 어머니께서 인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몰라서 그래. 예수님은 너희들이 잘못한 죄 때문에 문둥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매를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셔서 너희들을 지옥에서 건졌어. 지옥은 문둥병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야. 언제 이 엄마가 문둥이에게 밥만 주었더냐? 다 먹을 때까지 상 앞에 앉아서 예수 믿어야 된다고 했잖아. 땅에서 병들어 이 고통을 당하니 예수 믿고 하늘나라 가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도했잖아.”

어머니께서는 밥만 주시지 않고 항상 예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문둥병자는 “아줌마, 진짜예요? 나 같은 것이 예수 믿어도 돼요? 그런데 나 같은 것이 교회 가면 나가라고 그럴 텐데요?”라며 되물었다.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어머니가 아무리 말해도 그들은 믿지 못한 듯 교회에 오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情)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정은 상대편을 이해할 때 생깁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를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우리가 지옥 가서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내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상대편을 이해할 줄 아는 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네 속에서 정이 흘러나오게 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혈육 간의 정이 있습니까? 옛날에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촌도 형제와 같았습니다, 육촌이나 팔촌까지도 형제 같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친형제와도 한 집에 살 때는 형제인데 결혼하고 분가하여 제 자식을 낳기만 하면 서로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말만 형제지 정이 없습니다. 이처럼 말세에는 어떻든 돈 벌어서 자기가 잘 살아보겠다는 야욕은 충만한데, 자기가 가진 돈으로 형제를 도우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때가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무정할 수 없다
무정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남에게 피해를 주고서도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걸 어떡해야 하죠?”라는 것이 아니라 “변상해주면 되지 왜 그러십니까?”라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무정함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하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일로 압니다. 이렇게 지금은 무정한 때입니다. 사람이 체온이 있을 때는 만져 보면 따뜻합니다. 그런데 송장은 만지는 순간 손바닥에 들어붙는 것 같이 싸늘한 것이 소름 끼칩니다.

무정한 인간은 죽은 사람처럼 찬바람이 납니다. 예수 믿노라 하지만 그가 무정하다면, 그에게는 예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는 속에서 정이 팍팍 터져 나오는 분입니다. 무정한 자가 어떻게 주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우리 속에 무정함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정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3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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