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7-07 18:17:58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오직 천국에 이르는 것
신념과 이성으로 믿는 신앙 버리고 성경대로 믿어야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9).
오래전에 차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상담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어떤 분이 전화로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저는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명절 때만 되면 제사 문제 때문에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너무 힘듭니다. 우리 남편과 시댁은 제사 지내는 것을 신주단지 모시듯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상담하던 목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매님! 하나님께서 불화를 원하시겠습니까, 화목을 원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화목을 원하시겠죠.”
“그렇죠. 하나님도 가족과 대립하고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까 본을 보여야 합니다. 본을 보이기 위해서는 제사 음식도 차리고 시중도 들면서 가족들을 감동시킨 다음에 그들을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제사 지내시고 그 대신 마음속으로는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과 불화하면 안 되기 때문에 제사에 시중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완전히 다른 소리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10:34~3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 할 때 부모와 부딪치고 시어머니와 부딪치고 며느리와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먼저 영적 싸움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불화가 있다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어머니가 제사 지내지 않고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고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에게 맞아서 어머니 몸이 성할 날이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 집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덕이 안 된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족들과 불화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가족 구원을 막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가족과 화목하기 위해 죄와 타협하는 것이 옳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고 할 때 인간과 일어나는 불화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기에 이기면 하늘에 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일어나는 불화는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과는 아무리 불화가 일어날지라도 하나님과는 반드시 화목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라고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예수 믿는다고 그렇게 핍박을 했지만 결국에는 저희 아버지도 예수 믿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람과 불화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뜨겁게 영혼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를 핍박하던 가족들까지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우상에게도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하셨고, 이방인의 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을 절대화하고 순종하며 지킬 때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을 신성시하는 가톨릭
많은 기독교인이 가톨릭에도 구원이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궁금해 하고 때로는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가톨릭은 언뜻 보기에 기독교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비성경적 요소가 많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때 “우리가 성자 하나님께 기도하기는 너무 송구스럽고 불의하다. 그러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기도를 운반하게 하자”라고 해서 기도를 마리아에게 합니다. 마리아를 성모라 하여 신성시합니다.
성경은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 앞에 절하지 말라고 했는데 가톨릭은 성당마다 마리아 동상을 세워 놓고 마리아에게 기도합니다. 마리아를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면서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해 주는 중보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태어나게 하는 데 사용한 계집종일 뿐 결코 우리의 중보자가 아닙니다.
마리아 자신이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했습니다. 이때 계집종이란 아이를 낳기 위해 준비된 사람을 말합니다. 사라가 시집갈 때 하갈을 몸종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 데려가는 몸종은 밥해 주고 빨래해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 여자가 시집가서 자식을 못 낳아 주면 큰 저주 중에 저주였으므로 그것을 면하기 위해 데리고 간 것입니다. 시집간 여자가 아이를 못 낳으면 자신의 몸종을 자기 신랑에게 들여보내 대신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다시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이렇게 몸종은 아이 낳는 도구로 쓰였습니다. 이것이 계집종입니다.
마리아는 이와 같은 계집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어떤 변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기 몸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렇게 매를 맞고 곤욕을 당하고 피를 쏟으면서 골고다로 올라갈 때에도 아무 말하지 않았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최후에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며 죽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단 한 번도 예수가 자기 자식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계집종일 뿐 아무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조롱하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죄목으로 죽이려 할 때 마리아가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내가 피 쏟아 낳은 내 아들입니다”라고 말했다면 사람들은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죽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계집종으로서 주인이 하는 일에 아무 권리가 없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마리아가 어떻게 우리에게 절 받는 대상이 되고 우리의 기도를 운반하는 중보가 되겠습니까? 우리의 중보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딤전2:5).
오직 예수로만 천국에 이른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 신상을 세워 놓고 오고 갈 때마다 빌고 절하니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가톨릭이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우상숭배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가톨릭은 우상숭배 하고 제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모든 가톨릭 신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와 같은 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집종으로서 쓰임받은 인간에 불과한 마리아를 신성시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또 귀신과 교제하는 제사를 허용하고, 다른 구세주를 섬기는 종교를 인정합니다. 이처럼 가톨릭에는 분명히 우상숭배도 있고 다원주의도 있습니다.
믿노라 하면서 제사를 지내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행위, 하나님을 믿고 예수 보혈의 공로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신성시하는 행위, 이런 모든 것이 귀신을 섬기고 있는 행위입니다. 오직 예수만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다른 어떤 것도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계속>
『기독교 안에 있는 미신의 전통을 타파하라』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3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