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8-04 11:33:13 ]
가난하고 가진 것 없어도 영혼의 때를 위해 살며
멸시와 천대, 남의 시선까지 이기는 믿음 있어야
전도를 하다 보면 교회에 입고 갈 만한 좋은 옷도 없고 형편이 좋지 않아서 갈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 좋은 옷 입은 사람과 잘사는 사람만 교회에 오라고 했습니까? 예수께서는 오히려 가난하고 가진 것 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부르시며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마11:5;눅7:22). 그런데 돈이 없어 창피해서 교회에 못 가겠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돈의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
교인들을 심방하려고 하면 어떤 성도는 자신의 집이 너무 누추하니 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제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말똥, 소똥 냄새가 나는 외양간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계시면 아무리 누추한 곳이라도 바로 그곳이 거룩한 곳입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집을 누추하다고 생각합니까?
본인 스스로 열등감을 가지고 “나를 돈 없다고 깔보냐?”라고 하면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는 남을 깔봐서도 안 되고, 깔보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누가 깔보더라도 그렇게 보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말고 내 안에 계신 예수로 만족해야 합니다. 돈이 없어 가난할지라도 절대 돈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말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부자가 헌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헌금궤 앞에 앉아 사람들이 헌금하는 장면을 보셨습니다. 부자는 자기의 많은 돈으로 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가져다 바쳤습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예수께서는 그 가난한 과부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바쳤다며 가장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12:41~44).
이와 같이 하나님과 관계는 돈을 많이 드렸느냐 적게 드렸느냐로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로 측량하는 것입니다. 돈의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가치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돈의 가치로 계산해서 시험 들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없어도 충성할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기도해서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없어도 신령한 예배 속에서 영광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예수를 모른다면 절망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고(마11:5;눅7:22), 부자가 천국 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4;막10:25;눅18:25).
이 시대는 돈이 부모자식 간이나 형제간이나 부부간에도 원수를 만드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굉장한 것인 줄로 알지만 천하보다 귀한 목숨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육체가 살아갈 때에 도움이 되는 것뿐입니다. 부부간이나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갈라놓을 만한 이유가 없고 그만한 위력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돈의 위력을 대단하게 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갔고 그 집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낙원에 갔습니다. 음부에서 부자가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가 이 음부에 와서야 돈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 나사로의 손끝에 물 좀 찍어서 내 혀를 서늘케 해 주세요!”
“안타깝지만 그럴 수가 없구나. 너와 나 사이에는 구렁이 끼어 있어서 내가 너에게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네가 나에게로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단다.”
이 구렁은 곧 죄의 담입니다. 부자가 돈은 많았는데 그 돈으로 죄의 담은 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잣집 마당에서 개와 함께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는 돈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구원을 크게 여겼기에 낙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았지만 그 돈이 그를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음부에 간 부자는 영원히 물 한 방울 못 얻어먹고 활활 타는 지옥의 불꽃 가운데서 지금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만은 놓치지 말아야
그렇다면 결국 누가 위대한 사람입니까? 음부에 간 부자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면서 돈과 믿음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이 땅에서는 돈이 그렇게 대단해 보여도 최후의 상황에서 돈은 내 영혼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만 우리의 힘이요, 도움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것은 다 놓쳐도 예수만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하기 전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고 저에게 돈을 지배할 능력을 주세요.”
평신도 시절에 어떤 목사님이 돈 많은 사람이 헌금을 내면 그 사람에게 굽실거리며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교회를 운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는 돈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곳이 아니라 예수께서 움직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돈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해서 알아주거나 특별히 대우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절대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돈이 많으면 무엇이든 다 할 것 같지만 그 돈이 나이 들어 생기는 주름살을 펼 수 없고, 죄와 저주와 불가능을 해결할 수 없고,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돈은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에 의해 쓸 뿐이지 그 이상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계속>
『기독교 안에 있는 미신의 전통을 타파하라』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3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