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9-03 01:19:29 ]
기독교인들이 장례를 치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그 이후에 추도예배라 하여 죽은 사람을 기리면서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죽은 사람을 위한 예배가 기독교 안에서 오랜 전통이 되어 아무 문제의식 없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부친이 죽어서 장사 지내고 온다는 사람에게 “죽은 자는 죽은 자들로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눅9:59~60).
죽은 이를 위한 예배
사람들이 흔히 쓰는 ‘명복’이라는 말은 어두울 ‘명(冥)’ 자에 복 ‘복(福)’ 자입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은 죽은 뒤에 저승에 가서 복 받으라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죽은 이를 위해 예배드리는 것은 ‘예배’라는 말만 있을 뿐이지 예배를 드리면서 명복을 비는, 불교나 이방종교와 똑같은 행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추도예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제사를 지내고, 천주교도 제사를 지내고, 유교도 제사를 지내는데 기독교는 그냥 넘어가기가 밋밋해서 예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방종교인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예배라는 타이틀만 넣어서 포장한 것입니다.
기독교 장례 문화를 보면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는 입관식, 발인식, 하관식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유교에서 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가 언제부터인가 이런 의식을 하면서 입관예배를 드리고 발인예배, 하관예배를 드립니다. 제사상을 앞에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고, 죽은 이의 영혼이 이미 지옥 아니면 천국에 가 있는데 땅속에서 편히 쉬라고 기도합니다. 기독교에 원래 없던 것들을 다른 종교를 따라 예배라고 말만 바꿔서 죽은 이를 위한 의식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도예배의 ‘추’는 좇을 ‘추(追)’ 자를 쓰고, ‘도’는 슬퍼할 ‘도(悼)’ 자를 씁니다. 죽은 자를 좇아가면서 애도하고 슬퍼하며 예배드리는 것이 추도예배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왜 죽은 자를 좇아 가며 슬퍼하고 애도해야 합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이미 죽은 자에게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죽은 사람은 이미 심판이 끝났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를 위해 복을 빌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 영혼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며, 자기 믿음과 행위대로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 있을 뿐입니다. 죽으면 모든 상황이 끝이고 살아 있는 자가 복을 빈다고 해서 그 복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어떤 예배도, 어떤 의식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사하게 하고 산 자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이 죽은 자를 살린 적은 있지만 죽은 사람을 위해 예배드리러 가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성경 전체에 추도예배를 드렸다는 내용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명절이 되면 많은 사람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대이동을 하고 기독교인 중에는 제사 지내지 않고 추도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죽은 자를 위해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영혼이 편히 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천주교입니까, 불교입니까, 유교입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속고 있습니다.
예배라고 다 예배가 아닙니다. 죽은 자를 위해 복을 비는 기도나 죽은 자를 위하는 일들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미 죽은 자를 왜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기립니까?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 육체를 놓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만큼 죽은 육체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런 것은 불교나 유교나 가톨릭이 만들었습니다. 불교는 죽은 자를 위해 불공을 만들고, 유교는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만들고, 가톨릭은 죽은 자를 위해 연옥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위해서는 어느 것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살아 있을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추도예배가 기독교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인간 역사 속에 전통은 될지라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성경은 만세 전부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니 절대로 인간의 전통을 따라서는 안 되며 예나 지금이나 성경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다른데 내 몸에 젖었기 때문에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버려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 우상의 제물을 기도하고 먹어도 된다고 했습니까? 성경 어디에 죽은 자를 위해 예배하라고 한 곳이 있습니까? 가톨릭과 유교와 불교의 행위를 기독교가 가져다 예배로 바꾼 것입니다. 예배드린다고 성경을 읽고 찬송은 하지만 그들의 예배는 실상 죽은 자에게 드리고 있으니 이 예배를 어떻게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죽은 자에게 바치는 꽃
상갓집에 가 보면 영정에 바치라고 문 앞에 하얀 국화꽃을 놓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식이라고 생각해서 국화꽃을 영정에 바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사진이 꽃을 받을 리는 없습니다.
우상숭배가 무엇입니까? 인격 없는 것을 인격화시키고 그 앞에 인격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죽은 자에게 음식을 차리는 제사와 죽은 자에게 국화꽃을 바치는 것은 인격 없는 것을 인격화시키고 그 앞에 인격적인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이 자기가 경배받기 위해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귀신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는 하나님의 원수인데 하나님의 원수와 교제하고 하나님의 원수를 섬기는 자가 어떻게 천국에 가겠습니까? 영정 앞에 절을 하거나 국화꽃을 바치는 것이 죽은 자에게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영혼은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서 이미 심판이 끝났고 그 국화꽃과 절을 받는 대상은 바로 악한 귀신입니다.
우리는 죽은 자를 기릴 필요가 없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면 상주만 만나고 오면 됩니다. 조문이라는 것은 상주를 위로하고 상주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이지 절대로 죽은 자에게 절을 하거나 꽃을 바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우리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속고 있습니까?
<계속>
『기독교 안에 있는
미신의 전통을 타파하라』
윤석전 목사 著 / 연세말씀사
위 글은 교회신문 <40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