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40)] 육신의 소욕에 져서 주님을 배신하지 말라
등록날짜 [ 2014-09-30 18:24:24 ]
신앙생활에 게으르고 나태하고 거절하는 행위도 배신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고 성령의 뜻대로 살아야
예수께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신성모독죄로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다가 결국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셨지만, 그때 누구 하나 예수를 변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려내신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나인성 과부의 독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물론, 불치병으로 고통당하다가 예수께 고침받은 문둥병자, 소경,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법정에서 “빌라도여, 그가 왜 죽어야 합니까? 그는 나를 죽음에서 살린 전능한 분입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십자자형에 처합니까?”라고 변호하는 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얼마든지 예수를 변호할 만한 큰 은혜를 받았는데도 한 명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변호하다가 자기가 피해를 볼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도 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신
우리도 신앙생활 하면서 주의 일을 기분 나쁘다고 그만두고, 속상하다고 그만두고, 바쁘다고 그만두고, 힘들다고 그만두고, 맘에 안 맞는다고 그만둔다면,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 앞에 배신하는 행위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는데 삼 년을 기다려도 실과를 얻지 못하자 과원지기에게 땅만 버리느니 찍어 내버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무화과나무에 배신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강단에서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또한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면서 “꼭 그렇게 신앙생활 해야 하나?”라며 불평불만 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배신 행위입니다. 주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도 말세가 되면 믿음에서 떠나 배신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최후까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죽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배도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배도자를 제일 먼저 심판하셨습니다.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면 첫째 척결 대상으로 배도자를 지목했겠습니까?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19:20).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가 아내 삽비라와 함께 자기 소유를 팔아 복음 전도에 쓰려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3~4).
아나니야가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엎드러져 혼이 떠났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아내 삽비라가 남편에게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왔습니다. 베드로가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고 하자 “예, 이것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고 하자 삽비라 역시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중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는 배신 행위는 이렇게 하나님이 못 참으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분하셨으면 그렇게 즉각적으로 처리하셨겠습니까?
이렇게 이중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의 성령을 배신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신의 소욕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곧이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고백을 들으시고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21절 이하부터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서기관과 장로들과 제사장들 아래서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순간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며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무시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배반 죄가 됩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했습니다(갈5:17).
주님을 배신하게 하는 육신의 소욕
성경에 하나님을 배도한 사람들이 어떤 저주를 받았으며,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을 섬기고 감사한 사람들이 어떤 기업을 얻었습니까? 제일 복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고 어려울 때는 ‘이 고난을 넘기가 어렵다. 육체적으로 감당하기 힘들다’라는 마음이 들어도 ‘게으른 것은 악한 일이다. 악한 것은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짓이요 배신 행위다’라는 생각으로 이겨 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0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