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가 전하는 디모데후서 3장 강해(43)]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라

등록날짜 [ 2014-10-20 23:47:47 ]

교만과 욕심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게 해
배반자는 성령의 감동과 감화가 없고 결국 버림받아


사람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할까요. 첫째,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이라고 했습니다. 교만은 감사를 모를 때 거침없이 나오는 무서운 행동입니다. 교만한 만큼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교만한 만큼 자기 자신도 잊어버립니다.

교만한 만큼 온갖 실상을 망각합니다. 그만큼 교만은 무섭습니다. 겸손과 교만은 은혜를 기억하여 감사하느냐, 망각하여 배은망덕하느냐의 차이입니다.

교만하면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만 겸손하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자기가 잘하는 줄 압니다. 자기 주장에 논리가 정연합니다. 그렇지만 겸손한 사람은 받은 은혜 앞에 감사하여 절대로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둘째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시편 106편 13~14절에 “저희가 미구에 그 행사를 잊어버리며 그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금방 잊고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발하더니 하나님을 시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약1:12).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 외에는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했건만 아담은 기어이 먹지 말라 명하신 선악과까지 욕심부리고 먹고 말았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욕심은 마귀에서 나왔고 마귀의 본질이 교만입니다(요8:44).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교만하지 말고, 욕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배반자는 하나님께서 버리신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 자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요? 성경을 보면 첫째, 하나님께서 버리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들을 사정없이 버리셨습니다.

“아말렉 인과 가나안 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민14:43). 하나님께서는 배반하는 자와는 함께하지 않으신다는 말은 곧 버리겠다는 말입니다.

배반자는 하나님이 버리셨기에 더는 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니 교만과 오만만이 가득합니다. 성령의 감동, 감화가 이미 끊어졌으니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 됩니다.

당연히 교회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다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맙니다. 마치 뿌리가 잘리면 나무가 잠깐은 살아 있는 듯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바짝 말라 죽는 것처럼, 하나님을 배반한 자는 생명의 공급이 차단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또 시편 125편 5절에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자를 행악자와 함께 다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배반 자체가 악한 것이기에 악한 무리 속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하는 결과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망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 시험 들어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살펴봅시다.

신기하게도 시험 든 사람들끼리 함께 모여서 교회를 비방하며 수군 거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여 시험 든 자에게 속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속해야 합니다.

배반자는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
하나님 은혜를 배반하면 당연한 결과로 하나님과 갈라집니다. 갈라지는 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음부에 떨어져 물 한 방울을 달라고 애원하는 부자에게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이 무어라고 말했습니까?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내가 너에게로 가고 싶으나 갈 수 없고 네가 나에게 오고 싶으나 올 수 없다. 너와 나의 사이는 죄의 구렁으로 가로막혔다”(눅16:26).

배반이라는 죄가 쐐기처럼 박혀 다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배반자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은 단 하나 뿐. 회개하여 예수의 십자가 피 공로로 죄를 씻는 길뿐입니다.

죄가 이처럼 하나님과 나 사이를 천국과 지옥이라는 극과 극으로 갈라놓는데도 무엇 때문에 하나님 뜻대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갑니까? 왜 하나님과 함께 가지 않고 굽은 길로 갑니까.

교회에서 불평불만하고 쑥덕거리는 사람끼리 만나면 이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 속에 속했다면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중심으로 모여야지 주님을 떠나 인간끼리 만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배반자는 하나님과 갈라진 만큼 자기가 한 행위대로 보응을 받고 맙니다.

잠언서 14장 14절에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반자가 받을 보응을 그대로 받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마10:32~33).

하나님 나라에 갈 때, 주님께서 “내가 도무지 너를 모른다”고 말씀할 바로 그자가 배반자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배반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사람과 함께하느냐’, ‘사람에게는 배신당할지라도 하나님과 함께하느냐’ 하는 상황에서 죽으나 사나 오직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06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