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를 내세우기 위해 남을 불의하게 만드는 시대
유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불법이라도 전혀 서슴지 않아
디모데후서 3장 4절에서 말세에 고통 하는 때에는 “배반하여 팔며”라고 했습니다. 배반하여 파는 것은 마귀역사입니다.
마태복음 24장 9~10절에도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환난에 넘겨줍니까?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의 시기를 보낼 때를 예로 들어 봅시다.
당시 일제는 독립운동하다가 붙잡힌 독립투사들에게 악랄한 고문을 가해 붙잡히지 않은 동지의 이름을 대라고 했습니다. 일본 순사가 아무리 살을 불에 태우고 지지는 고문을 해도 “대한독립 만세”만 부르다가 고문에 못 이겨 끝내 옥에서 숨을 거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더러는 고문을 견디지 못해 다른 독립군의 이름을 대는 배반을 하며 목숨을 부지한 이도 있습니다. 말세에는 이렇게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배반하여 팔아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남을 불의하게 모함하거나, 배반하여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시대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배반하여 팔리우는 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많은 민족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든 성경이 말하는 말세가 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말씀대로입니다. 불법이란, 죄 없는 자를 자기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유다가 예수를 팔았습니까? 흉악한 이기주의 때문에 자기 유익을 취하고자 자기 선생을 은 삼십에 가차 없이 팔아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주의 일을 하는 척, 거룩한 척 하면서 속으로는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 이름을 판 어떤 장로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안 되어 마이크 앰프 시설을 보완하려고 청계천 전자상가에 갔습니다. 어느 상점에 가야 예수 믿는 주인을 만나 좋은 물건을 싸게 살까 하고 상호를 쭉 훑어 봤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 상호가 있어 들어갔더니, 마침 장로가 운영하는 가게였습니다. 개척교회 목사니 싸게 달라고 사정을 말하자 그 장로는 “제가 청계천에 빌딩이 여러 채 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세는 전부다 개척교회에 헌금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얼마나 존경스럽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가격을 흥정할 것도 없이 그 장로가 부르는 대로 현찰 130만 원을 주고 오디오 믹서를 사서 옆구리에 끼고 기분 좋게 교회로 왔습니다. 설치해 놓고 소리를 내 보니 좋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쓰다가 고장이 났습니다. 그 가게에 가져가서 공짜로 수리를 받았습니다. ‘역시 사장이 장로님이라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고장이 나서 수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가게에 제가 산 것과 똑같은 오디오 믹서가 진열되어 있기에 얼마냐고 물어 봤더니 63만 원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안 믿어져서 몇 번이나 물어 보았는지 모릅니다. 속은 것이 무척 속이 상했지만 참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속은 내가 잘못이지. 속이는 사람이 무슨 잘못인가?’라고 혼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 후 또 고장이 났기에 그 장로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장로님, 제가 잘못 말하거든 용서하시고, 사실이거든 내 돈 돌려주세요. 이 믹서가 바로 근처 가게에서는 63만 원에 판다고 합니다. 그런데 130만 원이면 갑절도 더 받았으니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장로 왈, “저도 장사꾼인데 이윤을 남겨야죠.” 기가 막혔습니다.
거기서 저는 그 사람이 개척교회 헌금한다, 가난한 교회 돕는다는 말로 예수를 빙자하여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는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신 장로 직분으로 목사를 속이고 성도를 속이는, 배반하여 파는 자입니다.
속은 사람으로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속에서 미움이 나오는 것을 못 참아서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금식해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겨우 바꾸었습니다.
사사로운 유익을 위해 사용한 예수
“배반하여 팔며”라는 말은 이처럼 예수를 빙자하여 잘못된 유익을 챙긴다는 말입니다. 임명받은 거룩한 직분을 빙자하여 자기 명예를 얻으려는 자, 직분을 빙자하여 사람 앞에서 높아지고 교만한 자들도 다 예수를 파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빙자하여 자기 의를 드러내지 말고, 예수를 팔아 유익을 보려 하지 말고, 예수를 빙자하여 명예를 가지려 하지 말고, 예수를 빙자하여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내 유익을 찾으려다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평신도 때 저녁에 교회 갔다 오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우리 집 아래 구멍가게에 가서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니 라면을 외상으로 두 개만 주세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믿느냐고 합니다. “저는 저 밑에 있는 교회의 집사입니다, 집사”라고 말하고 외상으로 라면을 가져왔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라면 두 개를 외상하려고, 거룩한 집사 직분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날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이름을 파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 이름을 정말로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이름을 팔지 않으려고 작정하고, 오직 그 예수를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려고 작정해야 합니다.
매사에 예수로 내 육체적 유익이나 위로나 부유나 명예를 가지려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려고 해야 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07호> 기사입니다.